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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원제 : All the Beauty in the World)

  • 글: 패트릭 브링리
  • 옮김: 김희정,조현주
  • 출판사: 웅진지식하우스
  • 발행일: 2023년 07월 24일

Pietà Pietà by Michelangelo


저자 소개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는 가족의 죽음으로 고통 속에 웅크리고 있던 한 남자가, 미술관에서 10년이라는 시간을 보내며 슬픔을 극복하고 다시 세상으로 나아갈 용기를 얻는 여정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뉴욕 한복판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보이는 사무실에서 승승장구를 꿈꾸며 커리어를 쌓아가던 어느 날, 암으로 투병하던 친형이 세상을 떠나는 비극을 겪는다. 이를 계기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지독한 무기력감에 빠진 끝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간에서 가장 단순한 일을 하며 스스로를 놓아두기로 마음먹는다.

1장. 가장 아름다운 곳에서 가장 단순한 일을 하는 사람

미술은 달빛 가득한 다른 세계에 속한다는 인상을 갖게 되었고, 여기에는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아버지는 일과가 끝난 후 집에 있던 업라이트 피아노를 몇 시간이고 연주하곤 했다. 그는 피아노를 사랑했다. 한동안 자동차 범퍼에 “피아노”라고만 적힌 스티커를 붙여놓을 정도였다. 아버지는 언제나 자신의 재능은 재능 자체가 아니라 즐거움에서 비롯한 부지런함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비록 뛰어난 실력을 갖추지는 못했지만 그가 존경하는 음악인의 양대 산맥인 바흐와 듀크 엘링턴의 음악을 다소 불안정할지언정 수줍어하지 않고 연주했다. 그리고 연주하는 내내 음악의 아름다움을 진심으로 찬양하며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예술가란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나의 생각은 분명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근본적으로 예술만이 가진 특별한 힘에 반응하듯 그 위대한 그림에 반응했다. 다시 말해서 그림의 위대한 아름다움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음에도 이미 그것을 충분히 경험한 것이다. 그때는 내가 느낀 감상을 말로는 분출할 수가 없었다. 사실 할 수 있는 말이 별로 없었다. 그 그림의 아름다움은 언어적인 것이 아니라 물감과도 같이 과묵하고 직접적이며 물체적이어서 생각으로 번역하는 것조차 거부하는 듯했다. 그래서 그림에 대한 나의 반응은 새 한 마리가 가슴속에서 퍼덕이듯 내 안에 갇혀 있었다. 그 감정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지금까지도 늘 어려운 일이다. 이제는 경비원으로서 수많은 방문객이 각자의 방식으로 이 신비로운 감정에 반응하는 것을 지켜볼 수 있게 되었다.

2008년 6월, 형이 세상을 떠나고 나자 나는 내가 아는 공간 중 가장 아름다운 장소에서, 떠올릴 수 있는 가장 단순한 일을 하는 일자리에 지원했다. 열한 살 때와 달리 이번에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생각지도 않으며 그곳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도착했다. 가슴이 벅차고 찢어지는 듯했다. 한동안은 그저 가만히 서 있고 싶었다.

이제 내가 할 유일한 일은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다. 망을 보는 것. 두 손은 비워두고, 두 눈은 크게 뜨고, 아름다운 작품들과 그것들을 둘러싼 삶의 소용돌이 속에 뒤엉켜 내면의 삶을 자라게 하는 것.

2장. 완벽한 고독이 건네는 위로

많은 경우 위대한 예술품은 뻔한 사실을 우리에게 되새기게 하려는 듯하다. ‘이것이 현실이다’라고 말하는 게 전부다. 나도 지금 이 순간에는 고통이 주는 실제적 두려움을 다디의 위대한 작품만큼이나 뚜렷하게 이해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이내 그 사실을 잊고 만다. 점점 그 명확함을 잃어가는 것이다. 같은 그림을 반복해서 보듯 우리는 그 현실을 다시 직면해야 한다.

3장. 위대한 그림은 거대한 바위처럼 보일 때가 있다

마치 아들이 살아 있는 것처럼 그를 껴안고 있는 어머니를 그린 이 그림은 ‘통곡Lamentation’ 혹은 ‘피에타Pietà’라고 부르는 장르에 속한다. 어머니는 늘 잘 울었다. 결혼식에서나 영화관에서나 눈물을 흘리곤 하는 사람이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어깨가 흔들리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 그녀가 심장이 부서지는 동시에 충만해져서 그렇게 울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그림이 어머니 안의 사랑을 깨워서 위안과 고통 둘 다를 가져다주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경배’를 할 때 아름다움을 이해한다. ‘통곡’을 할 때 ‘삶은 고통이다’라는 오래된 격언에 담긴 지혜의 의미를 깨닫는다. 위대한 그림은 거대한 바위처럼 보일 때가 있다. 말로 표현하기에는 너무 냉혹하고 직접적이며 가슴을 저미는 바위 같은 현실 말이다.

오랫동안 나는 뉴욕의 훌륭한 미술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눈여겨봐왔다. 보이지 않는 사무실에서 일하는 큐레이터들이 아니라 구석마다 경계를 늦추지 않고 서 있는 경비원들 말이다. 그들 중 한 사람이 되면 어떨까? 해결책이 이렇게 간단해도 되는 것일까?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는 세상에서 빠져나가 온종일 오로지 아름답기만 한 세상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속임수가 과연 가능한 것일까?

4장. 사치스러운 초연함으로

책 속 정보는 이집트에 관한 지식을 진일보시켰지만, 그와는 대조적으로 이집트의 파편을 실제로 마주하는 것은 나를 멈추게 한다. 이것이 예술의 본질적인 특성이다. 우리는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고 그다음으로 간단히 넘어갈 수 없다. 예술은 어느 주제에 관해 몇 가지 요점을 아는 것이 대단하게 여겨지는 세상을 경멸하는 것처럼 보인다. 요점이야말로 예술이 절대 내놓지 않는 것이다. 예술 작품은 말로 단번에 요약하기에 너무 거대한 동시에 아주 내밀한 것들을 다루는 경우가 많고, 오히려 침묵을 지킴으로써 그런 것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5장. 입자 하나하나가 의미를 갖는 드문 순간

어느 예술과의 만남에서든 첫 단계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한다. 그저 지켜봐야 한다. 자신의 눈에게 작품의 모든 것을 흡수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이건 좋다’, ‘이건 나쁘다’ 또는 ‘이건 가, 나, 다를 의미하는 바로크 시대 그림이다’라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이상적으로는 처음 1분 동안은 아무런 생각도 해선 안 된다. 예술이 우리에게 힘을 발휘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대개 우리는 유용한 정보를 얻기 위해 위협적이고 산만하게 쏟아져 들어오는 주위 자극들은 무디게 만들거나 아예 무시한다. 모네의 그림은 우리가 이해하는 모든 것의 입자 하나하나가 의미를 갖는 드문 순간들 중 하나를 떠올리게 한다. 산들바람이 중요해지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중요해진다. 아이가 옹알거리는 소리가 중요해지고, 그렇게 그 순간의 완전함, 심지어 거룩함까지도 사랑할 수 있게 된다.

6장. 예술가들도 메트에서는 길을 잃을 것이다

아메리카 전시관의 분수대 앞에서 한 어머니가 아이에게 동전 두 닢을 건네며 말한다. “하나는 네 소원을 위해서, 다른 하나는 네 소원만큼 간절한 다른 누군가의 소원을 위해서.” 이런 말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데 나는 듣자마자 언젠가 내 아이들에게 똑같이 말해주리라 결심한다.

보기 드문 사람이다. 아는 척을 하거나 비웃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수많은 새로운 아이디어들의 충돌을 반기는 사람. 나는 온종일 감탄했던 다른 어떤 것보다도 이 남자의 개방적인 태도에 더 탄복한다.

나는 사람들이 당황하여 나에게 질문하는 것을 특히 즐긴다. 사람들의 당황한 모습을 좋아하는 것이다. 그들처럼 계획이 뒤죽박죽된 채로 메트를 비틀거리며 돌아다니는 것이 말이 되지, 보는 것마다 성큼성큼 받아들이는 유식한 사람들이 오히려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당황한 사람들은 놀라운 것들을 보고 놀란다.

우리 중 누구도 이 주제, 그러니까 이 세상과 그 모든 아름다움에 관해 많은 것을 알지는 못한다. (…) 심지어 그 예술가들조차도 거대하고 갈피를 잡을 수 없기 일쑤인 이 주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도 메트에서는 길을 잃을 것이다.

하루가 끝난 후 86번가에서 지하철을 탄 나는 우물처럼 샘솟는 연민의 마음으로 동승자들을 둘러본다. 평범한 날이면 낯선 사람들을 힐끗 보며 그들에 관한 가장 근본적인 사실을 잊어버리기 일쑤다. 그들이 나만큼이나 실존적이고 승리하고 또 고통받았으며 나처럼 힘들고 풍요롭고 짧은 삶에 몰두해 있다는 사실을. (…) 오늘 밤은 운이 좋다. 낯선 사람들의 피곤하거나 어떤 생각에 빠져 있는 얼굴들을 애정을 갖고 바라볼 수 있다.

7장. 우리가 아는 최선을 다해

형이 하는 말은 더 이상 앞뒤가 맞지 않던 시기였다. 그런데 그런 형이 갑자기 고개를 들더니 치킨 맥너깃을 먹겠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맨해튼의 밤거리로 뛰어나가 소스와 치킨 너깃 한 아름 사 들고 돌아오던 그때보다 더 행복했던 적이 없었다. 침대를 둘러싼 채 우리는 우리가 아는 최선을 다해 사랑과 슬픔과 웃음이 가득한 소풍을 즐겼다.

가끔 나는 어느 쪽이 더 눈부시고 놀라운 것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위대한 그림을 닮은 삶일까, 아니면 삶을 닮은 위대한 그림일까.

8장. 푸른색 근무복 아래의 비밀스러운 자아들

그는 충격을 받은 내게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정말이지 괜찮아요. 살아 있고, 가족이 있고, 양심을 잃지 않았으니까. 날 죽이려고 했던 사람을 지금 당장 만나면 악수를 할 수도 있어요. 그러지 않을 이유가 없잖아? 괜찮아요.” 이야기를 마친 조셉은 일과를 끝내고 그레이트 홀에 모인 동료들을 둘러보며 말한다. “이 푸른색 근무복 아래에는 정말 갖가지 사연들이 있을 거예요.”

나는 스스로가 영원히 숨을 죽이고 외롭게 살기를 원치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람들과의 소통에서 만들어지는 운율을 깨닫는 것은 내가 자라서 어떤 어른이 될 것인지를 깨닫는 것처럼 느껴진다. 내가 삶에서 마주할 대부분의 커다란 도전들은 일상 속에서 맞닥뜨리는 작은 도전들과 다르지 않다. 인내하기 위해 노력하고, 친절하기 위해 노력하고, 다른 사람들의 특이한 점들을 즐기고 나의 특이한 점을 잘 활용하기 위해 노력하고, 관대하기 위해 노력하고, 상황이 좋지 않더라도 적어도 인간적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

9장. 예술이 무엇을 드러내는지 이해하려고 할 때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관심 영역은 하늘 높이 솟았다가 지렁이가 기어다니는 지하 무덤까지 내려가고, 그 둘 사이의 세상에서 사는 것이란 어떤 느낌이고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거의 모든 측면과 맞닿아 있다. 그런 것에 관한 전문가는 있을 수 없다. 나는 우리가 예술이 무엇을 드러내는지 가까이에서 이해하려고 할 때 비로소 예술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고 믿는다.

10장. 애도의 끝을 애도해야 하는 날들

나는 그녀의 그림이 얼마나 훌륭한지 믿을 수도, 견딜 수도 없어서, 아주 오랜만에 그저 깊이 흠모하며 바라보기만 했다.
이제 이런 순간들은 예전만큼 자주 오지 않고 그 사실을 인정하며 슬퍼진다. (…) 이상하게도 나는 내 격렬한 애도의 끝을 애도하고 있는 것 같다. 이제는 내 삶의 중심에 구멍을 냈던 상실감보다 그 구멍을 메운 잡다한 걱정거리들을 더 많이 생각한다. 아마도 그게 옳고 자연스러운 것이겠지만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11장. 완벽하지도 않고 완성할 수도 없는 프로젝트

자연은 단순함보다 대담하고 강한 것을 선호한다. 그런 것들은 아름답긴 하지만 항상 예술적이거나 명료하지는 않다. 경험상 내 삶도 그렇다. 이제 단순한 삶은 끝났다. 그러나 아기 덕분에 이제 내 삶도 더 아름답고 강건해지는 여정을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평생 처음으로 나도 뭔가를 만들어가고 있는 느낌이 든다. 엄청나게 무질서하고 즉흥적인 과정을 밟으면서 두 명의 작은 인간과 그들이 살아갔으면 하는 작은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결코 완벽하지도, 완성할 수도 없는 프로젝트겠지만 말이다.

12장. 무지개 모양을 여러 번 그리면서

미켈란젤로는 자신을 예술사 최고의 거장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게 분명하다. 날마다 그날 해야 할 일을 마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데 더없이 전념했기 때문이다.

미켈란젤로는 빈 종이 한 장만 있으면 모든 근심을 잊고 혼신의 힘을 바쳐 주어진 과제를 해냈고, 씁쓸한 불평 따위는 일이 끝난 후에나 하는 사람이었음이 분명하다. 어려운 일을 해내는 데 이보다 나은 방법이 또 있을까?

그는 죽기 며칠 전까지도 말을 잘 듣지 않는 대리석을 망치와 끌로 두드리고 있었다.

나는 이 퀼트의 기하학적 패턴뿐만 아니라 그 불완전함에 감동한다. 살짝 헤매는 듯한 구불구불한 선, 복잡하지 않고 간결한 바느질 자국, 즉흥적으로 구성된 재료들. 거기에는 근면성과 영감을 비롯해서 예술의 위력 중 가장 희망을 주는 것들이 넘치도록 들어 있다.
혼자 생각에 잠긴다. 여기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이 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처럼 세계적으로 장대한 곳에서 얻는 깨달음치고는 좀 우습긴 하지만, 바로 의미라는 것은 늘 지역적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가장 위대한 예술 작품은 자신의 상황에 갇힌 사람들이 아름답고, 유용하고, 진실된 무언가를 창조하기 위해 조각조각 노력을 이어 붙여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교훈까지 말이다.

13장. 삶은 우리를 내버려두지 않는다

“믿을 수 있겠어? 진심에서 하는 말인데 여기, 이 그림 앞에서 말라빠진 빵 조각이나 먹으면서 2주일 정도 앉아 있을 수만 있으면 내 명을 10년은 단축해도 좋을 것 같아.” 그러다가 마침내 그가 일어섰다. “하는 수 없지.” 그가 말했다. “여기 영원히 있을 수는 없는 일이잖아. 그렇지?”

빈센트의 <붓꽃>을 보고 있자면 가난과 자신을 괴롭히는 상념들에서 벗어나 그 생기 넘치는 단순함 속에서 영원히 살고 싶은 화가의 염원이 느껴진다. 그러나 몸을 돌려 우리 앞에 놓인 것을 직면해야 하는 시간은 오고야 만다. 빈센트의 이야기가 슬픈 것은 그가 삶을 살아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디테일로 가득하고, 모순적이고, 가끔은 지루하고 가끔은 숨 막히게 아름다운 일상. 아무리 중차대한 순간이라 하더라도 아무리 기저에 깔린 신비로움이 숭고하다 할지라도 복잡한 세상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돌아간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야 하고, 삶은 우리를 내버려두지 않는다.

내 앞에 펼쳐진 삶에서 나를 필요로 하고, 내가 필요한 경우들이 있을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다른 이들도 나를 위해 그렇게 해줄 것이라는 게 나의 희망이다.

여러분은 예술이 제기하는 가장 거대한 문제들에 대해 의견을 피력할 자격이 있습니다. 그러니 아무도 자기 생각을 들을 수 없다는 사실에 기대어 용감한 생각, 탐색하는 생각, 고통스러운 생각, 혹은 바보 같을 수도 있는 생각들을 해보십시오. 그것은 맞는 답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가 늘 사용하는 인간의 정신과 마음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함입니다.

때때로 삶은 단순함과 정적만으로 이루어져 있을 때도 있다. 빛을 발하는 예술품들 사이에서 방심하지 않고 모든 것을 살피는 경비원의 삶처럼 말이다. 그러나 삶은 군말 없이 살아가면서 고군분투하고, 성장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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