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

『대도시의 사랑법』

『대도시의 사랑법』

『대도시의 사랑법』

  • 글: 박상영
  • 출판사: 창비
  • 발행일:  2019년 07월 01일

대도시의 사랑법 Illustration by HIROSHI NAGAI

차례

  • 재희
  • 우럭 한점 우주의 맛
  • 대도시의 사랑법
  • 늦은 우기의 바캉스

p. 161

사흘 뒤, 그에게서 문자가 왔다. 친한 형에게 안 좋은 일이 생겨서 연락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 미안하다는 말도 고명처럼 곁들여져 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친한 형. 급한 일.
그래, 그랬겠지. 급한 일이 있었겠지. 바빴겠지.
그에게 화를 내지 않았다. 우리는 예전처럼,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대화를 나누었다.

pp. 168-169

한동안은 사람들이 사랑이라는 말을 하는 게 싫었다. 특히 동성애에 대해서 얘기하는 사람들은 그게 누구건 무슨 내용이건 이유 없이 패고 싶은 충동에 시달렸다. 다 똑같은 사랑이다, 아름다운 사랑이다,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는 것뿐이다……
사랑은 정말 아름다운가.
내게 있어서 사랑은 한껏 달아올라 제어할 수 없이 사로잡혔다가 비로소 대상에서 벗어났을 때 가장 추악하게 변질되어버리고야 마는 찰나의 상태에 불과했다.

pp. 308-309

그날 우리가 날렸던 풍등은 높이 떠오르지 못했다. 방파제를 넘어선 순간 풍등에 불이 붙었고,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사선으로 나부끼다 곧 먼바다로 추락해버렸다. (…)
나는 풍등에 쓸 문장을 여러번 고쳐 썼다. 다이어트, 주택청약 당첨, 포르셰 카이엔, 첫 책 대박 나게 해주세요…… 뭔가 다 내 진짜 소원이 아닌 것 같아 빗금을 쳐서 지워버렸다. 아마도 그러는 사이 구멍이 나버린 것이겠지.
나는 결국 풍등에 두 글자만을 남겼다.
규호.
그게 내 소원이었다.

This post is licensed under CC BY 4.0 by the auth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