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싯다르타』
『싯다르타』
- 글: 헤르만 헤세
- 옮김: 박병덕
-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02년 01월 20일
1부
바라문의 아들
싯다르타는 존경할 만한 수많은 바라문들을 알고 있었으니, 순수하고 박학다식한 학자인 그의 아버지는 그중에서 누구보다도 가장 존경할 만한 인물이었다. 자신의 아버지야말로 진정 경탄할 만한 존재였다. 아버지의 행동거지는 고요하고 고상하였으며, 삶은 순수하였으며, 말씀은 지혜로웠고, 두뇌는 훌륭하고 고귀한 생각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면 그토록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아버지는 과연 행복하게 살며, 마음의 평화를 얻었던가, 아니면 아버지도 단지 구도자(求道者)이자 목말라하는 자에 지나지 않는가?
(…)
자기 자신의 자아 속에 있는 근원적인 샘물을 찾아내어야만 하며, 바로 그것을 자기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 밖의 다른 모든 것은 탐색하는 것이요, 우회하는 길이며, 길을 잃고 방황하는 데 불과하다.
싯다르타의 생각들은 이러한 것이었으니, 이것이 그의 목마름이었고, 이것이 그의 고뇌였다.
사문들과 함께 지내다
싯다르타 앞에는 한 목표, 오직 하나뿐인 목표가 있었으니, 그것은 모든 것을 비우는 일이었다. 갈증으로부터 벗어나고, 소원으로부터 벗어나고, 꿈으로부터 벗어나고, 기쁨과 번뇌로부터 벗어나 자기를 비우는 일이었다. 자기 자신을 멸각(滅却)하는 것, 자아로부터 벗어나 이제 더 이상 나 자신이 아닌 상태로 되는 것, 마음을 텅 비운 상태에서 평정함을 얻는 것, 자기를 초탈하는 사색을 하는 가운데 경이로움에 마음을 열어 놓는 것, 이것이 그의 목표였다. 만약 일체의 자아가 극복되고 사멸된다면, 만약 마음속에 있는 모든 욕망과 모든 충동이 침묵한다면, 틀림없이 궁극적인 것, 그러니까 존재 속에 있는 가장 내밀한 것, 이제 더 이상 자아가 아닌 것, 그 위대한 비밀이 눈뜨게 될 것이었다.
“나는 물 위를 걷고 싶은 마음은 털끝만큼도 없어.” 싯다르타가 말하였다. “늙은 사문들이나 그런 재주들에 만족하고 있으라지!”
고타마
다른 사람의 인생에 대해 판단을 내리는 것은 제가 할 일이 아닙니다. 나 자신에 대하여서만, 오로지 나에 대해서만, 저는 판단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되고, 저는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되고, 저는 거부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깨달음
숲을 서서히 벗어나면서 싯다르타는 여러 가지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는 자신이 이제는 젊은이가 아니라 어른이 되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그는 마치 뱀이 옛 허물을 벗듯이 한 가지가 자신을 떠나 버렸다는 것을, 젊은 시절 내내 자신을 따라다녔으며 자신의 일부를 이루었던 한 가지, 즉 스승을 모시고 가르침을 듣겠다던 소망이 이제는 자신의 마음속에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의의와 본질은 사물들의 배후 어딘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물들 속에, 삼라만상 속에 있었던 것이다.
2부
카밀라
가난한 사람이 돈을 손에 쥐는 데는 달리 뾰족한 방법이 없어요. 도대체 당신은 무슨 일을 할 수 있지요?” “나는 사색할 줄을 아오. 나는 기다릴 줄을 아오. 나는 단식할 줄을 아오.”
“그 밖에 할 줄 아는 일은 아무것도 없나요?”
“아무것도 없소. 아니오, 나는 시를 지을 줄도 아오. 내가 시를 한 수 지을 터이니 그 대가로 나에게 입맞춤을 한 번 해주겠소?”
이보세요, 카말라, 만약 그대가 돌멩이 하나를 물속에 던지면, 그 돌멩이는 곧장 그 물 아래 밑바닥에 가라앉게 되겠지요. 싯다르타가 하나의 목표, 하나의 계획을 세우면 바로 그렇게 되지요. 싯다르타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아요. 그는 기다리고, 그는 사색하고, 그는 단식을 할 뿐이지요. 그러나 그는 아무 짓도 하지 않은 채, 몸 하나 까딱하지 않은 채, 마치 물속을 뚫고 내려가는 그 돌멩이처럼, 세상만사를 뚫고 헤쳐 나가지요. 그는 이끌려 가면 이끌려 가는 대로, 떨어지면 떨어지는 대로 놔두지요. 그의 목적이 그를 끌어 잡아당기지요. 왜냐하면, 그의 목적에 위배되는 것은 그 어느 것도 자기 영혼 속에 들여보내지 않기 때문이오. 이것이 바로 싯다르타가 사문들한테 배운 것이오. 이것이 바로 어리석은 사람들이 마술이라고 부르는 것이오. 어리석은 사람들은 이것을 마귀들이 부린 조화라고 말들 하지요. 아무것도 마귀들이 조화를 부려 생겨나는 것은 없지요, 마귀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아요.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색할 줄 알고, 기다릴 줄 알고, 단식할 줄 안다면, 마술을 부릴 수 있으며, 자기의 목적을 이룰 수 있소.
어린애 같은 사람들 곁에서
우리 같은 부류의 인간들은 아마도 사랑이라는 것을 할 수 없을 거야. 어린애 같은 사람들은 사랑을 할 수 있지. 그것이 바로 그들의 불가사의한 비밀이야.
당신은 나를 사랑하지 않아요. 당신은 아무도 사랑하지 않아요. 그렇지 않은가요?
윤회
단지 카말라만이 자기에게 사랑스러운 존재였고, 자기에게 소중한 가치가 있는 존재였다. 그러나 그녀가 아직도 그런 존재일까? 자기가 아직도 여전히 그녀를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일까, 또는 그녀 역시 여전히 자기를 필요로 하고 있을까? 그녀와 자기가 끝없는 유희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 끝없는 유희를 위하여 사는 것이 과연 반드시 필요한 것일까? 아니다, 그것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이런 유희야말로 바로 윤회라고 부는 것이다. 어린애들의 유희인 것이다. 아마도 한 번, 두 번, 열 번 정도는 애정을 지니고 놀아 볼 만한 유희일지도 모르겠으나, 그러나 계속하여 언제까지나 영원히 그 유희를 반복한다면 과연 어떨까?
그때 싯다르타는 이 유희가 끝났다는 것을, 자기가 이 유희를 더 이상 계속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그는 자신의 내면에 있던 어떤 것이 죽어 버리고 없다는 것을 느꼈다.
강가에서
이제 돌이켜 보니, 예전에는 마음이 너무나 병들어 있었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사람이건 사물이건 아무것도 사랑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알 필요가 있는 것이라면 모조리.’ 하고 그는 생각하였다.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몸소 맛본다는 것, 그건 좋은 일이야. 속세의 쾌락과 부는 좋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이미 어린 시절에 배웠었지. 그 사실을 안 지는 오래되었지만, 이제야 비로소 내가 그것을 직접 체험하게 되었군. 이제 나는 그 사실을 제대로 안 거야. 그 사실을 단지 기억력으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나의 두 눈으로도, 나의 가슴으로도, 나의 위(胃)로도 알게 되었어. 그것을 알게 되어 정말 다행이로군!’
뱃사공
이 강물은 흐르고 또 흐르며, 끊임없이 흐르지만, 언제나 거기에 존재하며, 언제 어느 때고 항상 동일한 것이면서도 매 순간마다 새롭다!
이야기를 하고 있는 싯다르타는 바주데바가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은 채 자기가 하는 말을 고요하게, 마음을 툭 터놓고, 느긋하게 마음속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바주데바가 자기가 하는 말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초조하게 다음 말을 기다리는 법이 없이, 자기가 말하는 중에도 칭찬의 말도 꾸중의 말도 하지 않고서, 다만 가만히 귀 기울여 듣고만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싯다르타는, 이런 식으로 자기 말을 들어주는 사람에게 자신을 고백한다는 것, 그리고 그런 사람의 마음속에다 자신의 인생, 자신의 구도 행위, 자신의 고뇌를 털어놓는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를 느꼈다.
아들
당신이 어린 아들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당신이 그 아이에게는 제발 번뇌와 고통과 환멸이 면제되었으면 좋겠다고 바라고 있기 때문에, 당신 아들에게는 그 길이 혹시 면제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믿고 있는 겁니까? 그렇지만 설령 당신이 아들 대신 열 번을 죽어 준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그 아이의 운명을 눈곱만큼이라도 덜어 줄 수는 없을 겁니다.
이제 자기 아들이 나타나고 나서부터는 싯다르타도 완전히 그런 어린애 같은 인간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한 인간 때문에 고통스러워하고, 한 인간을 사랑하고, 어떤 사랑에 빠져 버리고, 어떤 사랑 때문에 바보가 되어 버리는 그런 어린애 같은 인간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
그는 이 사랑이, 자기 아들에 대한 이 맹목적인 사랑이, 일종의 번뇌요, 매우 인간적인 어떤 것이라는 사실과, 또한 이 사랑이 윤회요, 흐릿한 슬픔의 원천이요, 시커먼 강물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와 동시에, 그 사랑이 가치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 사랑이 필수불가결한 것이며 자신의 본질에서 우러나오는 것임을 느꼈다.
옴
자기 말에 귀 기울이는 이런 사람에게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 보인다는 것은, 마치 그 상처를 강물에 넣어 씻어서 결국은 상처가 아물어 강물과 하나가 되는 것과 똑같은 일이었다.
고빈다
이보게, 고빈다, 내가 얻은 생각들 중의 하나는 바로, 지혜라는 것은 남에게 전달될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이네. 지혜란 아무리 현인이 전달하더라도 일단 전달되면 언제나 바보 같은 소리로 들리는 법이야.
(…)
지식은 전달할 수가 있지만, 그러나 지혜는 전달할 수가 없는 법이야. 우리는 지혜를 찾아낼 수 있으며, 지혜를 체험할 수 있으며, 지혜를 지니고 다닐 수도 있으며, 지혜로써 기적을 행할 수도 있지만, 그러나 지혜를 말하고 가르칠 수는 없네.
나는 사상과 말을 별로 구별하지 않는 입장이야.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사상이라는 것도 별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나는 사물들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어.
(…)
그는 스승도 없고 책도 없이 자네나 나보다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던 거야. 그 이유는 오직 한 가지, 그가 강을 믿었기 때문이지.
나는 그분의 위대성이 그분의 말씀, 그분의 사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행위, 그분의 삶에 있다고 생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