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용 인적성 검사의 비밀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취업 컨설팅 찌라시를 읽어 보면 “인적성검사 이렇게 준비하라!”는 글이 많다. 뭐라도 잡고 싶은 취준생들에게 질 낮은 혹은 허위 정보를 제공하며 장사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업 채용 전형에 사용하는 인적성검사를 직접 출제, 개발해본 입장에서 취업을 준비하는 청춘들을 응원하는 마음에 몇자 남겨본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
시작하기에 앞서 이 글이 “내가 해봐서 아는데”의 느낌으로 읽힐 거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아… 그리고 위에서 인적성검사라고 명시했지만 내가 실제 개발에 참여한 건 인성검사다. 흔히 인적성검사라고 하면 인성(성격)검사와 적성(지능)검사를 모두 포함한다.
적성검사에는 정답이 있다. 무조건 잘 풀면 좋다. 문제 해결 능력이 우수한 사람을 누가 마다하겠는가. (물론 상황판단검사 같은 건 좀 얘기하기 복잡한데 여기서는 다루지 않는다.)
이 글에서 다루는 범위는 인성검사에 한정한다. 인성검사는 “성격, 동기, 가치, 선호 등 개인이 대인관계나 문제해결 상황에서 보이는 고유한 특징을 측정한다”고 이해하면 된다.
기업에서 인성검사를 사용하는 목적이 무엇인가
인성검사에서 탈락, 합격하는 기준을 알고 싶다면 먼저 출제자의 의도부터 파악해야 한다. 크게 두 가지다.
- Screen-out (부적합한 사람 걸러내기)
- Select-in (적합한 사람 골라내기)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그동안 많은 기업들이 대부분 1번, Screen-out에 초점을 두고 인성검사를 사용했다.
1. Screen-out
“부적합한 인재를 거르겠다”, 다시 말해 “이런 사람은 뽑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이런 접근은 공채처럼 대규모로 지원을 받는 전형에서 특히 효과적이다. 적은 비용으로 지원자들을 한 번 솎아낼 수 있으니까.
Screen-out 검사는 일을 잘 못할 것 같은 사람을 떨어뜨리는 게 초점이 아니다. 위험한 성격 특성을 가진 사람을 거르는 것에 진정한 목적이 있다. 흔히 얘기하는 우울, 불안, 분노, 충동, 부도덕, 대인관계 결여, (과도한) 자기애 등 누가 봐도 안 좋은 거. 그래서 회사나 직무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동료들과 협업하지 못하거나 폭력, 도난 등 사건 사고를 일으킬 것만 같은 그런 가능성.
… 그렇다면
2. Select-in
이건 적합한 인재를 뽑겠다는 뜻인데, 이게 생각보다 어려운 문제다. “이런 사람을 선호한다”, “이런 사람이 우리와 잘 맞다”, “이런 사람이 일을 더 잘한다”라는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을 만큼 기업에서 지원자에게 기대하는 이미지가 명확한 경우에, 그리고 인성검사가 그러한 요소를 타당하게 측정할 수 있다는 판단 하에 사용한다.
이때의 기준은 ‘인재상’이라는 것일 텐데 대부분은 조직의 인재상을 의미한다. 그런데 더 나아가면 직무별 성격 특성이라는 것도 있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영업직군은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는 걸 즐긴다든가. 여기에다가 조직 내 고성과자들이 보이는 특성 같은 것들도 고려할 수 있다. 만약 이것까지 복합적으로 고려하려 설계한 검사하면 개발 과정에서 꽤 공을 들였을 가능성이 높다.
더 나아가면 여러 성격 요인들의 조합으로 미리 그려놓은 인재상과의 유사도를 계산할 수도 있다. 무조건 점수가 높아야 하는 게 아니라 회사가 기대하는 패턴으로 결과가 나와줘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실제로 이렇게까지 검사를 개발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지원자가 이걸 예상해서 검사에 응답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니 이럴 수도 있다는 것 정도만 알고 안심하고 넘어가는 게 정신 건강에 좋다. 자신이 컨트롤 할 수 없는 영역은 마음을 비워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전략으로 응답해야 할까
기업에서는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 목적을 동시에 달성하려 한다. 그리고 이 두 가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검사 세트를 구성하려면 ‘목적에 따라 문항이 분리’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 이유에 대해 굳이 부연 설명을 하자면… (읽기 싫으면 넘어가도 되는 부분이다.)
심리검사는 보이지 않는 개념을 측정하는 도구이다. 따라서 통계적으로 명확한 요인 구조가 확인되어야 안정적인 검사로 인정 받을 수 있다. 통계적으로 명확한 요인 구조를 확보하려면 측정하고자 하는 요인마다 문항을 몇개씩 할당하고 그 문항들을 섞어서 검사 세트를 구성하는 게 가장 일반적이다.
물론 측정하고자 하는 요소마다 문항을 구성하지 않고 문항을 중복해서 채점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하나의 문항을 가지고 긍정적인 성격 요인 ‘호기심’을 측정하는 동시에 부정적인 특성으로 ‘자극 추구’를 채점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렇게 복합적으로 채점하는 검사는 개발하기 만만치 않아서 애초에 흔치도 않고, 그런 문항이 있더라도 일부분이다.
어쨌든 지원자는 각 문항이 어떤 걸 묻는지 빠르게 이해하고 그에 맞춰 응답하면 좋다. 이건 부적응 특성을 묻는 거구나, 이건 인재상을 묻는 거구나. 감을 잡고 응답하자.
간혹 찌라시들을 보면 기업에서 선호하는 인성, 인재상을 나열해놓고 기업마다 인재상에 끼워 맞춰서 우선순위를 정해서 찍으라는 얘기가 있는데… 정말 말리고 싶다. 겉으로 드러난 인재상과 인성검사에서 확인하는 요소들은 매우 다를 수 있다. 인성검사는 결코 암기과목이 아니며, 해답을 모르는 게 당연한 검사다. 오히려 그런 강박 때문에 자칫하면 덫에 빠질 수도 있다. 많이 고민하지 말자. 장고 끝에 악수 둔다.
도저히 뭘 묻는지 모르겠는 문항이 등장할 때
검사 안에는 ‘이 문항은 이런 성향을 측정하겠구나~’라는 감이 오는 문항도 있지만, 뭘 알아보려 하는 건지 조금도 이해할 수 없는 문항도 있다. 극단적으로 예를 들자면 ‘나는 아이스크림을 좋아한다.’ 같은 문항.
이런 문항이 왜 포함되어 있을까. 이걸 설명하려면 다시 어려운 얘기를 해야 한다.
일단 심리검사 문항을 개발할 때는 크게 두 가지 접근을 사용한다.
- 심리학은 인간의 행동과 그에 대한 이해를 연구하는 분야이기 때문에 현상을 바라보고 설명하는 관점, 즉 이론적 배경이 중요하다. 그래서 인간의 성격에 대한 개념 모델을 세우고 이에 따라 소위 말하는 Top-down 방식으로 문항을 개발하는 접근이 있다. 예를 들면 ‘외향적인 사람은 이런 문항에 이렇게 응답할 것이다’라는 가설을 가지고 문항을 개발하는 거다.
- 이와 반대로 경험적으로 개발하는 접근이 있다. 검사 문항(문장)은 일종의 자극이고 그걸 우린 어떤 식으로든 해석해서 행동(응답)한다. ‘이런저런 자극을 줘봤는데 이 자극에 이렇게 반응하는 사람이 결국 이런 성향을 지녔더라’라는 데이터 중심적인 접근, 소위 말하는 Bottom-up 방식으로 문항을 개발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아이스크림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훨씬 긍정적이더라’라는 식의 설명이다.
아무튼 문항 중에 뭘 측정하는지 알 수 없는 문항이 있다면 경험적인(2번) 방식으로 개발된 문항일 가능성이 높다. 참고로 병원 정신과에서 많이 사용하는 MMPI 검사도 많은 문항이 이런 식으로 개발됐다.
이런 문항들은 겉으로 봐선 나의 응답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의도를 알 수 없으니 채용 장면에서 기업들이 사용한다면 매우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타당도 연구가 까다로워 애초에 이런 문항을 제대로 개발하기 쉽지 않다. 게다가 어떻게 채점될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고민할 필요 없다. 정 걱정된다면 많은 사람들이 선택할 것 같은 쪽을 고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지원자들이 주의할 점
어쩌면 이 글에서 진짜 중요한 건 이 부분일지도 모른다.
1. Faking Good, 오버하지 말 것
대부분의 인성검사에는 거짓으로 응답한 지원자를 걸러내는, 좀 과장된 표현의 문항들이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면 “나는 지금까지 핑계를 대본 적이 없다.” 이런 거. 이런 문항은 정직성이 아닌 잘 보이려는 태도를 측정할 가능성이 높다. 흔히 응답 신뢰도, 응답 왜곡, 인상 관리, 사회적 바람직성 등 다양한 표현을 사용해서 부른다. 어쨌거나 함정이니 적당히 솔직하게 응답하는 게 좋다.
취업을 하겠다는 열정과 간절함으로 인해 이성이 흐려질 수도 있을 거다. 부디 오버하다가 오히려 낚이지 않기를 바란다.
2. 응답 일관성에 대한 강박을 버릴 것
많은 사람들이 ‘일관성 있게 응답을 해야 한다’, ‘응답 신뢰도에 신경 써야 한다’ 등의 얘기를 많이 하는 것 같은데… 이런 얘기는 취준생들의 불안만 조장할 뿐이다. 오히려 이 부분은 신경 쓰지 않는 게 좋다. 왜냐하면 채용장면은 매우 강력한 유인이 있는 상황이라 다들 집중하고 긴장해서 응답을 하기 때문에 웬만하면 일관적으로 응답하는 것으로 결과가 나온다.
응답의 일관성은 정신병리적인 특성이나 유인이 낮은 상황에서 주의 집중 결여나 사고의 혼란, 불성실한 응답 태도 등을 파악하기 위한 목적으로 주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막 찍는 사람들 걸러내기. 채용 인성검사에서 일관성이 부족하다고 떨어질 일은 정말 극히 드물다.
오히려 극단적으로 응답하다보면 faking good이라는 함정에 걸릴 수 있으니 차라리 일관성에 대해서는 걱정 말고 편안하게 응답하는 게 더 낫다.
지원자의 인성검사 결과가 좋으면 기업에서는 그 사람을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할까? 아닐 거다. 그러나 결과가 부정적으로 나오거나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고 뜨면 일단 의심하거나 거르고 볼 가능성이 높다. 특히 공채는. 그러니 ‘합격’이 목표가 아니라 ‘탈락 피하기’가 목표가 되어야 한다.
결론
그럼 이제 정리를 해보자.
- 대부분의 인성검사는 Screen-out과 Select-in이라는 두 가지 목적에 따라 문항 구성되어 있으니 센스있게 판단해서 응답하자.
- Screen-out 문항은 부정적인 성격을 측정하기 때문에 그런 문항이 눈에 보이면 반응하지 않아야 한다.
- Select-in 문항은 인재상에 부합하는 성격인지 묻는 것이기 때문에 좋든 싫든 그들이 원하는 답을 주자. 적어도 인성검사 통과가 목표라면 과도한 솔직함은 접어두는 게 맞다.
- 도저히 뭘 묻는지 모르겠는 문항은 그냥 마음을 비우고 사람들이 많이 선택할 것 같은 응답을 고르자. 아무도 모른다.
- 너무 명백하거나 뭔가 좀 부자연스러운 문장들은 faking을 측정하는 함정일 가능성이 높다. 오버하지 말고 적당히 솔직하게 응답하자.
- 일관성 있게 응답을 해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자. 응답 일관성이 부족해 탈락하는 경우는 드물다.
- 응답을 과장하면 검사 결과의 신뢰도가 낮아져 탈락시킬 구실을 제공하게 될 수도 있다. 인성검사에서는 ‘합격’이 아니라 ‘탈락 안하기’가 더 중요하다는 걸 염두에 두자.
그리고 만약 이렇게 했는데 인성검사에서 탈락했다면 그 이유는 대충 아래와 같다.
- 애초에 인성검사가 엉망이다. 이런 검사는 지원자들을 제대로 측정하지 못하는, 대충 개발된 검사다.
- 다른 지원자들이 나보다 더 잘 풀었다. 다들 기가 막히게 회사에서 원하는 답을 해서 솔직하게 응답한 내가 오히려 상대적으로 위험한 사람처럼 보였다.
- 그 회사나 직무가 나와 정말 안 맞는다.
1번과 2번은 운이 없는 케이스다. 나는 운은 모두에게 ‘어느정도’ 공평하다고 믿는 편이다. 그게 행운이든 불운이든. 주사위를 여러번 던지다보면 행운이 올 거다. 어쨌든 이겨내자.
어쩌면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얘기는 사실 3번이다. 3번은 오히려 운이 좋은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 재수 없게 합격해서(?) 입사하고 진정한 고통이 펼쳐질 수도 있었는데 똥을 피한 셈이기 때문이다. 물론 많은 취준생들이 지금 ‘난 어디든 붙기만 하면 감사한 마음으로 다닐 텐데’ 혹은 ‘회사가 다 거기서 거기지. 결국 회사지. 비슷하겠지’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요즘 많은 신입 사원들이 1년 이내에 퇴사를 한다는 얘기가 있지 않은가. 실제로 입사 후에 지옥이 펼쳐지는 경우가 오히려 더 많으며 이건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잘 생각하자. 세상은 정말 넓고 온갖 조직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아무튼 취준생은 멘탈이 너덜너덜 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무조건 행복 회로를 돌리고 정신 승리 해야 한다. 인성검사에서 탈락했다면 회사가 당신을 거절해줬음에 감사하자. 당신의 잠재력을 알아봐주는, 당신과 잘 맞는 혹은 기꺼이 다닐만한 회사가 분명히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