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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열두 방향』

『바람의 열두 방향』

『바람의 열두 방향』 (원제: The Wind’s Twelve Quarters)

  • 글: 어슐러 K. 르 귄
  • 옮김: 최용준
  • 출판사: 시공사
  • 발행일: 2014년 12월 05일

목차

  • 샘레이의 목걸이
  • 파리의 4월
  • 명인들
  • 어둠상자
  • 해제의 주문
  • 이름의 법칙
  • 겨울의 왕
  • 멋진 여행
  • 아홉 생명
  • 물건들
  • 머리로의 여행
  • 제국보다 광대하고 더욱 느리게
  • 땅속의 별들
  • 시야
  • 길의 방향
  •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
  • 혁명 전날

샘레이의 목걸이

나는 여전히 낭만주의자이고 그 점에 대해 의심하지 않으며 또한 내가 낭만주의자인 게 기쁘다.

파리의 4월

‘전문가주의’는 미덕이 아니다. 프로란 아마추어가 열정 때문에 하는 일을 돈을 받고 하는 사람에 불과하다. 하지만 돈의 경제학에서 보면, 보수를 받는다는 것은 자신이 한 작업을 여러 사람이 알게 되고 읽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작가와 독자의 의사소통을 의미하는 것이고 또한 이는 예술가의 목적이기도 하다.

명인들

그 사람은 이 세상과 신 사이의 거리를 재려고 시도했다.

어둠상자

“바깥에는 지금 태양이 빛나고 있나?”
“네, 그렇습니다…… 지금은요.”
“좋아, 그렇다면, 그럴 만한 가치가 있지.” 젊은 왕자는 이렇게 말하며 방문을 열었고, 공포에 질린 사람들이 아우성치고 있는, 햇빛이 밝게 비치는 복도로 성큼성큼 나갔다. 리카르드의 등 뒤로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해제의 주문

볼은 자신에게 패한 모든 마법사와 사람들을 이런 무덤에 산 채로 가둔단 말을 들었어. 그 사람들은 1년이고 2년이고 탈출하려 애쓰면서 살았고…….
하지만 갇힌 자가 만약 살지 않는 쪽을 선택한다면?
그래서 페스틴은 선택을 했다. 만약 내가 틀렸다면, 온 세상 사람들은 나를 겁쟁이라고 생각하겠지, 하는 생각이 마지막으로 떠올랐지만 페스틴은 이런 생각에 더 이상 연연하지 않았다. 한쪽으로 고개를 약간 돌려 눈을 감고 마지막으로 심호흡을 한 다음, 일생에 단 한 번밖에 할 수 없는 해제의 주문을 속삭였다.
이번 주문은 변신이 아니었다. 페스틴은 변하지 않았다. 몸, 긴 팔다리, 손재주가 많은 손, 나무와 개울을 바라보길 좋아하던 두 눈도 변하지 않은 채 그대로였다. 그저 꼼짝도 하지 않고, 미동도 없이 차가움으로 가득 차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벽은 사라지고 없었다. 마법으로 세워진 둥근 천장도 방도 탑도 사라졌다. 그리고 숲도 바다도 저녁 하늘도 사라졌다. 모두 사라졌고, 페스틴은 새로운 별들 아래 있는 생명의 언덕의 아득한 비탈을 천천히 내려가고 있었다.
(…)
별들은 여전히 머리 위에 떠 있었다. 그리고 별들을 바라보는 동안, 페스틴은 생명의 숲에 있는 시내의 목소리와 나뭇잎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천천히, 아주 천천히 잊기 시작했다.

이름의 법칙

“여러분은 지금의 이름을 버리고 여러분의 참이름을 갖게 돼요. 절대 물어서도 안 되고 함부로 알려줘서도 안 되는 이름을 갖게 되지요. 왜 이런 법칙이 생기게 됐을까요?”
(…)
“왜냐하면 이름은 사물 그 자체니까요. 그리고 참이름은 사물의 참된 본질이에요.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그 사물을 통제하는 것과 같습니다.”

“바깥 해역을 혼자 여행하는 사람은 딱 한 부류야. 마법사나 요술쟁이 아니면 현자지…….”

겨울의 왕

“복잡성을 포용하는 것은 삶의 기쁨입니다. 우리의 차이는 우리의 아름다움이고요. 모든 세계와 여러 형태, 생각하는 방식, 생명 그리고 육체가 모두 합쳐 멋진 조화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조화는 지속될 수 없는 것이야.” 젊은 왕이 말했다.
“이제까지 그 누구도 성공한 적이 없습니다. 시도하는 데서 기쁨을 얻는 것이죠.”

멋진 여행

미쳐가는 아내를 바라보면서 가장 힘든 점은 자신이 아내와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내는 침묵으로 일관된 여행을 떠나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점점 더 멀어져간다.

자, 환각제에 취하자. 환각제를 하자, 환각제가 되자. 유리 벽을 깨부숴. 내 아내가 갔던 곳으로 나를 데려가줘.

오, 미쳐버린 내 사랑, 침묵에 잠긴 사랑, 내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내가 정신병원에 팔아넘긴 아내, 이소벨이여. 이리 와서 나를 당신으로부터 구해주오! 나는 당신 뒤를 따라서 이 모든 길을 올라와 이제 여기에 홀로 서 있소. 어디에도 갈 길이 없다오.

아홉 생명

이 친군 전에도 다른 사람은 볼 필요가 없었어. 한 번도 외로운 적이 없었거든. 자기 자신만 보면 됐어. 평생 다른 아홉 개의 자아와 말하고 살면 되었단 말이야. 이 친구는 외로울 때 어떻게 하는지 몰라. 이제 그걸 배워야 해. 시간을 좀 주자고.

퓨는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나도 모르겠어. 일부는 습관이겠지. 나도 모르겠어. 우린 서로 외로웠어. 어둠 속에서 손을 내미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겠지?”

물건들

나는 <물건들>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달았다. 왜냐하면 (적어도 심리신화를 읽은 뒤에는) 이 제목이 강조해야 할 것을 제대로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쓰고 우리가 소유하고 또한 우리를 소유하는 물건들, 벽돌이나 단어처럼 우리가 만드는 물건들 말이다. 우리는 이런 물건들로 집과 마을과 보도를 만든다. 하지만 집과 마을은 파괴되고 보도는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 세상에는 심연이, 갈라진 틈이, 맨 마지막으로 걸어야 할 걸음이 존재한다.

언덕회관으로 올라가던 또 다른 이웃은 황금빛 오후 햇살을 받아 부드럽고 발그레하게 빛나며 쌓여 있는 예쁘장하게 구워진 벽돌 더미, 덩어리, 무더기들을 잠시 들여다보더니 그곳에 쌓여 있는 벽돌 무게만큼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물건들, 물건들! 물건들로부터 자유로워야 해, 리프, 자네를 끌어당겨 가라앉힐 무게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우리와 함께 가자고, 종말의 세상 위쪽으로 말이야!

머리로의 여행

“제가 어떤 사람인지 말할 수 없다면 어떻게 제가 제 이름이 뭔지 말할 수 있겠어요?”
“당신이 누군지 어떻게 알아낼 건가요?”
“제가 가진 게 있으면…… 무슨 일을 한 게 있다면…….”
“그게 당신을 존재하게 하나요?”
“당연하죠.”
“그 생각은 못 했네요. 음, 그렇다면 당신이 무슨 이름으로 불리건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어떤 이름이라도 역할은 다할 테니까요. 중요한 건 당신이 무얼 하느냐 하는 점이죠.”

“제가 남잔가요?” 그가 물었다. “당신은 여자고?”
“저에게 묻지 마세요.” 상대방이 시무룩하게 대답했다. “이거야말로 분명히 짚고 넘어갈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토록 중요한 건 아니에요.”
“당신 말은 제가 남자든 여자든 ‘문제 되지 않는다’는 건가요?”
“물론 문제는 되죠. 저에게도 문제는 되고요. 또 우리가 어떤 남자와 어떤 여잔지도 중요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어떤 남자와 어떤 여자가 아닌지도 중요하겠죠.

찰스는 완전히 잘못된 방향으로, 거꾸로 문제에 달려들었던 것이다. 찰스는 잘못된 이름을 찾아냈다. 찰스는 돌아서서, 자기 보존의 최소한의 충동도 없이, 길 없는 숲 속으로 뛰어들었다. 자기 자신을 던짐으로써 찰스는 자신이 던져버린 것을 찾을 수 있을 터였다.
나무 아래에 들어서자마자 남자는 다시 자기 이름을 잊었다. 또한 자신이 찾고 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도 잊어버렸다. 남자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이었나? 남자는 더 깊이 더 깊이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나뭇잎들 아래로, 동쪽으로, 이름 없는 호랑이가 불타오르는 숲 속으로.

제국보다 광대하고 더욱 느리게

이 글의 제목은 마블의 시 <수줍은 연인에게="">에서 빌려온 것이다. “내 식물 같은 사랑은 제국보다 광대하고 더욱 느리게 자라겠지요…….” (...)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는 숲이, 아직 아무도 탐험하지 않은 끝없는 숲이 있다. 우리 각자는 매일 밤 홀로 그 숲에서 길을 잃어버린다.

대체 오즈딘은 무엇을 기대한 걸까? 자신을 자신이 행동하는 방식으로 대해주기? 사랑?
“남이 자신을 딱하다고 생각하는 걸 견디지 못하는 것 같더라.” 1층 침대에 누워 젖꼭지를 치장하며 올레루가 말했다.
“그러면 오즈딘은 그 어떤 누구와도 인간관계를 맺을 수 없어.”

“숲이라는 단어에는 필연적으로 이질적 세계라는 은유가 함축되어 있으니까.”

도미코는 가만히 누워 자기 동맥에 피가 흐르는 소리를, 자는 사람들의 숨소리를, 바람 소리를, 어두운 혈관이 흐르는 소리를, 꿈이 다가오는 소리를, 우주가 천천히 죽어가며 별의 거대한 정전기가 커지는 소리를, 죽은 자들이 걸어 다니는 소리를 들었다. 도미코는 침대에서 빠져나오려, 자기 선실의 작은 고독으로부터 도망치려 발버둥쳤다.

“바로 그거야! 그게 공포야. 우리가 움직인다거나 파괴를 할까 그런 게 아니야. 원인은 바로 우리 자신인 거지. 우리는 타인이야. 이곳에는 타인이 존재한 적이 없었다고.”

갑자기 오즈딘은 조용히 움직여 출입구에서 힘차게 나가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오즈딘은 떠났다.
‘내가 간다!’ 입 밖으로 나오지 않은 위대한 소리가 들렸다.

오즈딘은 두려움을 자기 안에 받아들여 초월해버렸다. 오즈딘은 자신을 외계에 스스럼없이 내던져버렸고 거기엔 악한 것이 들어찰 수 없었다. 오즈딘은 다른 존재를 사랑하는 법을 배웠고 그러므로 자신을 내던질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이성의 어휘로는 쓸 수 없는 이야기였다.

땅속의 별들

“오직 여기 아래 있는 사람들만 믿을 수 있어. 광산으로 내려와 있는 사람들은 믿을 수 있지. 여기까지 내려온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과 친구들의 손 말고 또 무엇이 있겠는가? 수평 갱도가 무너지거나 수직 갱도가 막히고, 결국 막다른 곳에 갇혔다고 해보세. 갇힌 이를 구해내겠다는 동료들의 손과 삽과 의지를 빼면, 그 사람과 죽음 사이에 과연 무엇이 있을 수 있겠는가? 여기 지하 어둠 속에 있는 우리들이 서로 믿지 못한다면 저 위쪽 태양 아래에는 은을 볼 일이 없을 거야. 여기 지하에서는 친구를 믿고 의지할 수 있지.”

“땅속에 별이 있는 거야.” 궤나르는 속으로 말했다. “단지 사람들이 그걸 어떻게 봐야 하는지 모를 뿐이지.

시야

“내가 원하는 건 답이 아니라 질문입니다. 난 내 삶이 다시 돌아오기를, 나의 원래 죽음을 원한단 말입니다!”

길의 방향

나는 영원한 존재가 되는 것은 온몸을 다 바쳐 반대한다.
영원은 내가 관계할 일이 아니다. 나는 떡갈나무이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나에게는 내 임무가 있으며 나는 그 임무를 수행한다. 비록 새들의 수가 적어지고 바람 냄새가 역겨워진 이래 그 수가 더욱더 적어지긴 했지만, 나에겐 나만의 즐거움이 있고 그것을 즐긴다. 비록 내가 오래 살아왔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비영속성은 내 권한이다. 죽을 운명은 내 특권이다.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

낙원이 우리에게 제공된다면, 그리고 어느 외딴 곳에서 길 잃은 한 영혼만 고통을 당하면 그 낙원에 있는 수백만 명이 영원히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설사 그런 식으로 제공되는 행복을 붙잡고 싶은 충동이 우리 안에 인다 할지라도 그러한 거래의 열매를 자신의 의지로 받아들여 얻은 행복이 얼마나 추잡한가를 스스로가 명확히 느끼는 것 말고 다른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

행복이란, 꼭 필요한 것,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해롭지도 않은 것, 그리고 해롭기만 한 것을 구별할 줄 아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혁명 전날

운동에서 그러한 패배를 겪고 당신 반려자가 죽었는데도, 감옥에서 그렇게 계속해서 버티고 활동하고 쓸 수 있었다니 당신은 어쩌면 그리도 용감하게 살 수 있었습니까?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멍청이들. 거기서 달리 할 일이 뭐가 있단 말인가? 대담함, 용기. 무엇이 용기였단 말인가? 라이아는 용기가 무엇인지 이해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두려워하지 않는 것, 누군가 그렇게 말했다. 두려워하지만 계속해서 나아가는 것, 또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계속해서 나아가는 것 말고 사람이 또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이제까지 인간이라는 존재가 진정한 선택권이라는 것을 가져본 적이 있었는가?
죽는다는 것은 단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만일 집에 오고 싶었다면 계속해서 나아가야 하는 것이고, 그것이 라이아가 “진정한 여행은 돌아오는 것”이라 썼을 때 의미한 것이었다.

유명한 혁명론자, 기타 등등 그 이상의 것은 라이아, 바로 라이아 자신인가, 그런가? 아니다. 그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라이아는 누구인가?
타비리를 사랑했던 사람.
그렇다. 어김없이 사실이다. 그러나 충분하진 않았다. 지나간 일이다. 타비리는 오래전에 죽었다.
“난 누구지?” 라이아는 보이지 않는 청중에게 중얼거렸고, 그들은 그 답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입을 모아 대답했다. 라이아는 딱지 앉은 무릎을 한 소녀, 늦여름의 열기 속에 현관 계단에 앉아 리버 거리의 먼지 낀 금빛 아지랑이를 응시하고 있는, 여섯 살 난, 열여섯 살 난, 거칠고, 비뚤어진, 꿈 많은 소녀, 아직 더럽혀지지 않았고 더럽혀질 수 없었던 소녀였다. 그녀는 그녀 자신이었다.
(…)
사실 라이아는 연인이자 인생의 한가운데를 헤엄치는 사람이었으나 타비리는 죽으면서 그때의 라이아를 함께 데려가버렸다. 아무것도, 정말로 아무것도 남은 게 없었다. 오직 처음 그대로의 라이아, 어린 시절의 가공되지 않은 라이아만이 남았다. 라이아는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라이아는 집을 떠난 적이 없었다. “진정한 여행은 돌아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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