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SF 게임』
『아무튼, SF 게임』
- 글: 김초엽
- 출판사: 위고
- 발행일: 2024년 07월 10일
차례
- 오래전 이미 이곳에 와본 것 같다
- 기억을 잃은 주인공의 부활
- 세계를 경험하는 것
- 이 모든 것은 거짓말, 그래도 이 세계는 선명하게 아름답고
- 선택하기를 선택하기
- 중독의 재발견
- 전쟁 게임을 즐기는 평화주의자
- 도마뱀 외계인을 사랑해도 될까요
- 컴플리트를 포기하며
나는 게임의 이런 스토리텔링 방식이 현실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과 닮아 있어서 재미있다고 느낀다. 삶에는 많은 이야기 조각들이 있다. 원한다면 이것을 서사화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굳이 그러지 않는다. 삶이 이야기가 되는 것은 조각들을 끼워 맞추려고 애쓸 때나 가능한 일이다(현실의 작가, 특히 내러티브 논픽션을 쓰는 작가는 이 조각들을 서사화하는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우리는 그냥 살아간다. 도처에 있는 정보와 사건과 이야기를 스쳐 지나간다. 마찬가지로 게임 속에서 플레이어도 이야기를 대충 흘려듣고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다. 심지어 그런 플레이가 즐거움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일단 발견하려고 노력하기만 한다면, 어마어마하게 많은 이야기를 목격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게임이라는 매체는 ‘세계를 경험하는 것’과 가장 유사한 경험을 주는 게 아닐까.
「파인딩 파라다이스」에서 닐 와츠 박사는 말한다. “가끔은 우리의 기억과 그 안의 모든 것이, 우리 스스로에게 들려주는 허구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어.” 이야기는 허구와 진실에 대해 치열하게 묻는다. 기억을 조작하는 것이 기만인가 아닌가, 그 질문에서 필연적으로 파생되는 또 다른 질문들을 직면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 이야기가 허구를 옹호하고 있다고 느꼈다. 때로 우리의 기억 속에서 허구와 진실은 구분되지 않으며, 그렇기에 허구도 진실만큼이나 의미를 가지는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이 말은 마치 모든 이야기 매체에 건네는 위로처럼 들리기도 했다. 우리는 허구를 만들고 있다고. 어차피 이 모든 것은 다 거짓말이라고. 그래도 이 세계는 선명하게 아름답고, 우리가 초대한 이들이 여기서 행복했다면, 이것은 가치 있다고. 마치 그렇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물론 그 허구 속 행복은 짧고 허망하다. 언젠가 덧없이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렇지만 어차피 삶도 그런 것 아닌가.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게이머들은 게임 속의 악행을 그저 가볍게 즐기고 떠난다. 많은 게임이 그 행위에 대해 굳이 한발 물러나 묻지 않고, 플레이어를 굳이 불편하게 만들지 않는다. 그렇지만 나는 게임이 그 재미와 내용과 행위성에 대해 더 많이 질문할 때 이 매체가 더 깊이 있는 재미를 품게 되고, 매체로서 성숙해지며, 더 나은 사회에 기여할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한다. 표현의 자유와 치열한 윤리적 고민은 공존할 수 있다. 게임은 점점 더 막대한 영향력을 가지게 되어 이제 더는 사회로부터 유리되어 존재할 수 없는, 사회와 강력하게 상호작용하고 있는 매체다. 그렇기에 게임이 스스로 묻지 않는다면 게임 바깥에서라도 물어야 한다. 게임은 상호작용으로 완성되기에 윤리적 고민은 오직 창작자만의 몫이 아니라 플레이어의 몫이기도 하다.
요소를 속속들이 파악하고 모든 경로를 다 가보고 각각의 엔딩을 전부 봐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면서 나는 비로소 게임을 즐길 수 있게 됐다.
(…)
제한된 기술과 제한된 정보를 손에 쥐고 나는 어설프게 앞으로 나아간다. 어느 하나도 잘하는 것 없이.
그런데 이상하게도 ‘잘하기를 그만둔’ 이 세계 안에서 나는 현실보다 더 많은 일을 한다. 현실보다 더 과감해지고 더 멀리 간다. 실제로는 바퀴벌레 한 마리도 못 잡으면서 게임에서는 내 몸만큼 거대한 ‘라드로치’를 때려잡고, 지금까지 실내 클라이밍장에 가자는 친구의 집요한 제안에 늘 고개만 저어왔으면서 게임에서는 설산을 등반하고, 얼음 호수를 수영하고, 비포장 산길을 덜컹거리는 차로 내달린다. 그러다 가끔은 실패하고, 죽는다. 좀비한테 물려서, 차가 절벽으로 떨어져서, 성벽을 기어오르다 잡을 것을 놓쳐서…. 그래도 게임은 늘 미숙한 나에게 다음 시도를 허용한다. 다시 물리고, 다시 추락할 기회를 준다. 몇 번을 다시 죽더라도.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원래 책에 메모를 하지 않는 편인데, “삶을 게임처럼 살 수 있을까?”라는 메모는 지워지는 볼펜으로 썼다. 지워지는 볼펜으로 뭔가를 쓸 때, 나는 사실 지울 생각을 거의 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조금 더 과감해진다. 마구 밑줄을 긋고 책 본문만큼이나 빼곡한 메모를 남기기도 한다. 지울 수 있다고, 리플레이할 수 있다고, 이것으로 끝이 아니라고 믿는 것은 용기를 준다.
그런데 그 메모는 정말 지워지는 게 맞았을까?
그 믿음이 픽션에 불과하다고 해도, 때로 삶에는 그런 픽션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