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리뷰 《Outer Wilds》
그동안 미뤄두다가 드디어 플레이 하게 된 게임 《Outer Wilds》. (한국어로는 ‘아우터 와일즈’, 혹은 ‘아우터 와일드’라고 쓰기도 하던데 나는 그냥 아우터 와일즈로 부르겠다.)
이 게임은 BAFTA(British Academy of Film and Television Arts)에서 2019년도 최우수 게임으로 선정된 바 있다. BAFTA는 올해의 게임(GOTY)을 시상하는 여러 매체들 중에서도 꽤 권위 있는 곳으로 꼽힌다. 물론 대중성, 흥행성보다는 예술성, 작가 정신, 기존과 차별화된 시도를 한 게임들에게 좀 더 후한 평가를 주는 경향이 보이긴 한다.
언론 매체뿐만 아니라 이 게임을 실제로 플레이한 게이머 사이에서 평 또한 어마어마하게 좋다. 스팀 평가는 당연히 “압도적으로 긍정적”.
나 또한 직접 해보니 왜 이 게임이 상을 받았는지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약 36시간 플레이해서 엔딩까지 다 봤는데, 일주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운이 가시지 않는다. (심지어 폰 배경화면도 이 게임 포스터로 바꿨다.)
아무튼 인생 게임을 찾았으니 글을 남기지 않을 수가 없어서 이렇게 주절거리게 되었다. 그럼 리뷰 시작.
게임 배경 및 설정
일단 이 게임이 뭐하는 게임이냐고 묻는다면, 우주 탐사 게임(?)이라고 답을 해야 할 것 같다. 스포 없이 대충 감을 잡아보고 싶다면 공식 출시 트레일러를 보면 된다.
아주 크지 않은 태양계 안에서 각각의 특징을 가진 행성들을 탐험하는 게임이다. 전투 같은 건 전혀 없다.
게임 전에 몇 가지 설정을 미리 알고 시작해도 괜찮다.
우주탐사대 “아우터 와일즈 벤쳐스” 소속으로 첫 탐사를 떠나는 주인공
이 게임은 주인공이 첫 우주 탐사를 떠나기 위해 준비를 하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아우터 와일즈 벤쳐스”라는 우주탐사대 선배(?)들은 이미 다른 행성으로 흩어져서 탐사를 하거나 그곳에 정착해 캠프를 꾸리고 있다. 그런데 좀 재밌는 설정이 있다면 이 대원들이 각자 악기를 하나씩 연주하고 있다는 거다.
그리고 주인공은 신호탐지기라는 장비를 통해 그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과 거리를 감지할 수 있는데, 각 대원들의 연주 소리는 내가 행성을 탐사하며 길을 찾을 때 굉장한 도움이 된다. (언젠가 “한 번 송출된 라디오 전파는 영원히 우주를 떠돈다”는 글귀를 본 적이 있는데, 어쨌거나 꽤나 낭만적인 설정이다.)
아무튼 지구에서 우주선 조작 방법이나 몇가지 도움말을 익힌 후에는 바로 우주선을 타고 자유롭게 우주를 돌아다니면서 이런저런 행성들을 탐험하면 되는 게임이다. 태양계가 크지 않고 행성도 몇 개 없어서 우주선 타고 금방 왔다갔다 할 수 있다.
어느 시점이 되면 폭발해버리는 태양
게임을 플레이를 하다 보면 태양이 어느 순간 초신성이 되어 폭발하고 플레이어는 즉시 사망한다. 그리고 다시 눈을 뜨면 게임을 시작한 지점으로 돌아와있다.
이 폭발을 처음 겪으면 좀 당황할 수밖에 없는데, 이 게임은 애초에 ‘저장하기’ 기능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죽어버린 건 아닌지 의문이 생길 수 있다. 다행히 폭발 전에 내가 탐사했던 기록은 우주선 일지에 고스란히 남기 때문에 그 죽음이 곧 ‘저장하기’ 기능과 다름 없다. 그리고 태양이 매 22분마다 무조건 폭발한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결국 22분짜리 타임 루프를 무한히 도는 와중에 여기저기를 탐사해 우주선 일지를 채워가는 방식으로 플레이를 하면 된다. 탐사 도중 선배 대원들을 만나거나 외계인들이 남겨놓은 흔적을 찾다 보면 혹시 태양의 폭발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내가 할 일은 무엇인지 서서히 알게 된다.
단, 이 게임의 목표는 뚜렷하게 주어져있지 않다. 대부분의 게임들이 퀘스트, 미션의 형태로 무엇을 해야 한다는 지령을 내리기 마련인데, 아우터 와일즈에서는 그런 건 없다. 그래도 탐사를 하며 정보를 수집하다 보면 게임 전체를 관통하는 스토리의 단서가 우주선 일지에 정리되어 기록되기 때문에 이를 통해 내가 어디로 가서 무슨 일을 할지 스스로 결정해서 게임을 계속 진행할 수 있다.
게임 플레이 방식 및 공략
이 게임은 길찾기가 핵심이다. 도저히 건널 수 없는 장애물을 마주하더라도 절대 절망하지 말자. 포기하지 않는 마음가짐이 정말 중요하다. 각 행성마다 가진 고유한 특징이 있기 때문에, 그 안에 단서가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지형이 바뀌기도 하고, 때로는 다른 단서를 통해 길을 발견하게 될 수도 있다. 신호탐지기나 정찰기를 잘 활용해야 할 수도 있고. 한 행성에서 더 못 찾겠으면 다른 행성으로 향하자. 다른 행성에서 알게 된 정보를 가지고 그 행성을 돌파해야 하는 경우도 있을 테니.
그리고 양자역학의 아이디어를 활용한 간단한 퍼즐(관찰자 효과? 슈뢰딩거의 고양이?)도 등장한다. 이 게임의 스토리 전체를 꿰뚫는 핵심적인 아이디어이기도 한데, 게임 내에 단서와 설명이 있기 때문에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게임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막막해질 수가 있다. ‘내가 현재 모을 수 있는 단서는 다 모은 것 같은데, 대체 그 다음엔 어디로 가야 되는 거야? 여기로 가려면 대체 어떻게 해야 되는 거야?’ 이런 생각이 들 수가 있다.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절대 절망하지 말자. 모은 단서들을 다시 잘 읽어보면 길이 보인다.
공략은 절대 보면 안 된다. 스스로 단서를 보며 길을 찾아야 짜릿한 감흥을 느낄 수 있고, 결국 모든 비밀을 파헤치는 게 이 게임의 목표이기 때문에. 굳이 답지를 놓고 플레이를 하는 건 최후의 보루로 생각해야 한다.
단, 이 게임의 공식 한글 번역이 불친절하다고 한다. 그래서 나도 비공식 한글패치를 설치했다. 이 게임에서는 수집하는 단서의 해석이 중요하기 때문에 한글 패치를 꼭 재설치해서 플레이하자.
그리고 조작감이 구리다는 얘기가 종종 있는데, 개인적으로 이 점에 대해서는 별로 동의하기가 어렵다. 애초에 무중력 (혹은 중력이 다 다른) 상태에서 움직이는 별들 사이를 이동하는 것이기에 이 정도의 느낌이겠거니 충분히 감안하고 오히려 재밌게 플레이할 수 있었다. 행성에 착륙하거나 특정 물체에 다가갈 때 “속도 일치시키기” 기능을 활용하면 금방 적응할 수 있으니 겁먹지 않아도 된다.
내가 이 게임을 죽을 때까지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
일단 스포 없이 이 게임에 대한 소감을 적어보자면…
아우터 와일즈는 반복적인 죽음이라는 신기한 경험을 제공한다.
대부분의 게임에서 죽음은 그저 메커니즘이나 규칙일 뿐이다. 생명이 다 하거나 시간 내에 임무를 완수하지 못했을 때 실패했다는 식으로 플레이를 중단시키는 게 전부다. 그리고 대부분 약간의 희생을 감수하고 이전 시점부터 플레이를 하게 해준다.
그러나 이 게임에서 죽음은 필연이다. 내가 잘하면 사는 것도, 못해서 죽는 것도 아니다. 때가 되면 태양이 무조건 폭발하기 때문에 당연히 죽는 거다. 그래서 게임 초반에는 주어진 탐사 시간이 얼마 없다는 생각 때문에 일종의 타임 어택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중요한 장소를 처음 발견하고 탐사를 시작했는데 폭발 시간이 다 되어가면 너무 조급해지고, 하던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서두르게 되더라.
그러나 결국엔 때가 되어 또 죽는다. 그리고 눈을 뜨면 다시 시작점. 허탈하다.
그런데 이렇게 어김 없이 찾아오는 죽음을 반복해서 마주하다 보면 그 죽음을 대하는 내 태도가 서서히 바뀌는 걸 깨닫는다. 나중에는 죽음이 얼마 안 남았음을 감지하고(특정한 음악이 나오기 때문에 알 수 있다.) 모닥불 앞에 앉아 태연하게 마시멜로를 구워 먹거나 태양이 눈 부시게 터져버리는 광경을 바라보며 멍 때리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더라.
게임 초반에는 시간이 흘러 죽음을 마주해야 한다는 사실이 조급하게 느껴지지만, 어느새 내가 먼저 마중나가서 그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게 된다. 이건 정말 놀라운 경험이다.
(이제부터는 게임의 결말을 중심으로 소감을 전해야 하기 때문에 스포가 있음.)
그런데 나를 한 번 더 놀라게 만든 건 이 게임의 결말이다.
행성들을 탐사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외계인들이 남겨놓은 연구 흔적들을 수집하게 되고, 이런 정보와 장치들을 활용하면 태양의 폭발, 즉 이 세계의 종말을 멈출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된다. (특히 워프의 원리를 깨닫고 처음 성공했을 때 그 짜릿함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물론 이 희망이라는 것도 썩 온전하진 않다. 애초에 이 게임이 나에게 ‘목표’라는 걸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요한 단서를 모은 것 같긴 한데, 그래서 구체적으로 내가 뭘 향해 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을 갖고 게임을 계속 하게 된다. ‘양자의 달’에는 대체 어떻게 갈 수 있지? 막상 가면 대체 뭐가 있을까? 말로만 듣던 ‘우주의 눈’이라는 게 진짜 존재하긴 하는 거야?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우주의 눈’은 실재하는 곳이었고, 결국엔 외계인들이 그토록 도달하고 싶어했던 궁극의 장소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곳에 발을 디뎠을 때는 정말 가슴이 두근구든했다. 그리고 태양의 폭발이나 세상의 종말을 막을 수 있겠다는 기대도 생겼다.
그러나 이 기대는 오래 가지 않는다. 그동안 22분 타임 루프를 가능하게 했던 장치를 우주의 눈에 오는 데 사용했기 때문에 타임 루프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상태였고, 그럼에도 태양은 때가 되어 어김없이 폭발했으며, 결국 나(주인공)는 사망해버린다. 이쯤에서 ‘그러면 난 그동안 대체 무슨 고생을 한 거야?’ 하는 허무함마저 든다.
그렇다.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것. 고작 그 지긋지긋한 루프를 끊어냈을 뿐이었고, 오히려 완전한 죽음을 맞은 셈이다. 내가 우주의 비밀을 밝혀내고 세상의 종말을 막는다? 이런 건 애초부터 이 게임의 목표가 아니었던 거다.
내가 마지막으로 믿고 도착했던 장소 ‘우주의 눈’이 그동안 외계인들의 숭배를 받았던 것도 어쩌면 당연한 거였다. 그들도 이곳에 닿으면 죽음을 막을 수 있을 거라 믿어왔던 거다. 그러나 이곳에 신은 없었다. 때가 되어 태양은 폭발했고 결국 우리 모두 죽었다.
그렇다면 아우터 와일즈가 얘기하는 “삶의 의미”란 무엇일까.
열심히 플레이 했으나 결국 허무하게 죽어버린 주인공이 도착한 곳은 어느 숲 속 모닥불 앞. 이미 게임을 플레이하며 만났던 아우터 와일즈 대원들이 각자의 악기를 들고 모닥불 앞에 하나둘 모여 앉아 합주를 시작한다.
물론 이들의 연주는 게임을 플레이하며 신호탐지기를 통해 여러번 들었기 때문에 꽤나 익숙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렇게 모든 악기가 동시에 연주하는 음을 듣고 나면 이게 결국 하나의 완성된 곡이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결국 우리의 삶은 다가올 죽음을 부정하거나 이에 맞서 싸우는 과정이 아니었다. 그저 주어진 시간 동안 새로운 곳을 탐험하고, 각자의 사연이 있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과 음식을 나눠 먹고 함께 노래하는 것.
생각해보면 내가 우주를 돌아다니며 추적했던 외계인들의 흔적에서도 그들의 치열한 연구, 그리고 사랑 같은 걸 기록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물론 그들은 우주의 눈을 찾는 데 실패했지만, 그 과정에서 죽기 전까지 진실하게 살아왔던 거다.
오히려 ‘우주의 눈’의 근처까지 왔던 외계인이 한 명 있었는데, 만났을 때 그의 모습은 살아 있는 것도, 그렇다고 죽은 것도 아닌 림보 상태에 빠져 있었다.
그를 만나 대화를 해보면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건 오히려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허무한 상태라는 걸 깨닫게 되기도 한다.
아무튼 이 게임의 엔딩을 보고 나서야 드디어 긴장이 풀리며 내가 그동안 해왔던 모든 탐사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애초에 이길 수 있는 싸움이 아니었던 거다. 죽음을 겸허하게 받아들이자 비로소 마음 놓고 동료들이 연주하는 그 음악을 즐길 수 있게 된다.
이 게임은 엔딩 크레딧 이후 143억년이 지난 시점에서 새로 탄생한 행성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아예 처음 보는 외모의 생물체(?)가 모닥불을 쬐고 있는 게 눈에 띈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위로를 받을 수 있다. 나의 세계는 반드시 끝을 맞이할 테지만, 그와 동시에 우주 어딘가에서는 또 다른 가능성이 새롭게 피어난다는 것. 그것도 내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모습으로.
내가 죽기 전에, 살아 있는 동안 이렇게 아름다운 게임을 해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아직까지 가슴이 벅차다.
요즘엔 이 게임의 사운드트랙 듣는 낙으로 살고 있다.
이 게임의 제작 다큐멘터리도 재밌게 봤다.
내 인생 게임 Outer Wilds. 죽을 때까지 못 잊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