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

《The Witness》 — 처음으로 돌아가야 보이는 답

《The Witness》 — 처음으로 돌아가야 보이는 답

선 하나로 이루어진 섬

《The Witness》의 외형은 단순하다. 1인칭 시점으로 외딴 섬을 돌아다니며, 벽에 붙은 사각 판 위에 규칙에 따라 선을 긋는 퍼즐을 푸는 게 전부다. 대사도, 전투도, 튜토리얼조차 없다.

그런데 이 단순한 게임의 엔딩을 보고 나면 이 게임이 주는 메시지에 압도당하게 된다. 그 얘기를 하려면 아주 약간의 스포일러는 어쩔 수가 없다. 스포일러 없이는 이 게임이 얼마나 훌륭한지 얘기하는 게 어렵기 때문.

이 게임에는 선생이 없다

이 게임의 가장 급진적인 지점은, 퍼즐의 규칙을 단 한 번도 말로 설명해주지 않는다는 데 있다. 새로운 기호가 등장하면 플레이어는 아주 쉬운 판부터 차례로 풀어보면서 그 기호의 의미를 스스로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고, 수정하며 알아내야 한다. 누가 가르쳐주는 게 아니라 내가 발견하는 거다.

그리고 게임의 진행은 비선형적이다. 지금 눈앞의 퍼즐을 풀지 못하더라도 다른 곳에 있는 퍼즐부터 풀다가 나중에 다시 와서 풀 수 있다. 이 구조 자체가 하나의 태도를 가르친다. 당장 눈앞에 닥친 문제가 풀리지 않을 때는 잠시 숨을 돌리고 다른 곳을 탐험해보라고. 그리고 그렇게 조금씩 모은 단서를 연결하다 보면 어느 순간 스스로 답을 발견하게 된다고.

섬 곳곳에는 과학자, 수도자, 철학자들의 말을 인용한 음성 기록이 숨겨져 있기도 하다. 이 게임이 단순한 두뇌 퍼즐 모음이 아니라 앎과 깨달음에 관한 게임이라는 걸, 제작자는 곳곳에서 넌지시 드러낸다.

게임의 결말 — 그리고 이 글의 제목에 관하여

결국 섬의 퍼즐들을 모두 풀면 이 외딴 섬에서 탈출하게 되고(새장 안에 갇혀 있던 새처럼 자유롭게 날아간다), 엔딩 씬에서 내가 그동안 거쳐온 지역들을 보여주면서 결국엔 처음에 시작한 지하 터널로 되돌아간다. 그러고는 갑자기 게임이 ‘툭’ 하고 꺼져버린다. 처음엔 오류인 줄 알았는데, 다시 켜보니 오류는 아니었다. 그냥 말 그대로 맨 처음으로 돌아가 있더라.

그래서 다시 지하 터널을 나가보니 정확히 처음 이 게임을 켰을 때와 똑같은 장면에 놓이게 되는데…

여기서 충격적인 일이 벌어진다. 처음엔 안 보였던 이 게임의 열쇠, 궁극적인 답이 비로소 보이는 거다. 답이 처음부터 내 앞에 있었는데, 게임을 다 플레이하고 나서 지금까지 학습했던 새로운 관점으로 이 장면을 바라보니 그제서야 비로소 답이 보이더라.

결국 이 게임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새로운 관점(perspectives)”이다. 세상은 바뀐 게 하나도 없다. 바뀐 건 보는 사람이다. 깨달음이라는 게 어딘가 먼 곳에 숨겨져 있는 보물이 아니라, 이미 눈앞에 있던 것을 비로소 볼 수 있게 되는 사건이라는 것. 게임의 제목이 왜 ‘목격자(The Witness)’인지도 여기서 이해가 된다.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하는 일은 무언가를 정복하거나 획득하는 게 아니라, 결국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The Witness》는 흩어진 정보를 모아 스스로 해답을 찾는 과정(학습), 산을 오르는 여정(성장), 그 여정 속에서 뒤를 돌아봤을 때 새롭게 보이는 것들(관점의 전환)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가 자기 자신,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이 세계를 완전히 이해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대부분의 문제들은 답이 명확하지 않고, 이 미지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방법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의 경우 분명한 건 더 좋은 사람, 그리고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거. 그러기 위해서는 나의 지루한 일상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탐험하고, 그렇게 모은 정보들로 새로운 관점을 형성해보고, 그 관점으로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발견해야 한다는 것.

그렇게 이 게임도 내 일상과, 내 관점과 어떤 식으로든 연결될 거다.


게임을 다 플레이했다면 제작자를 인터뷰한 다큐멘터리도 볼 만하다.

This post is licensed under CC BY 4.0 by the auth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