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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Remains of Edith Finch》 — 죽음을 이야기로 남긴다는 것

《What Remains of Edith Finch》 — 죽음을 이야기로 남긴다는 것

잠긴 방들의 집

《What Remains of Edith Finch》(국내에는 “에디스 핀치의 유산”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의 이야기는 단순하다. 17세 소녀 에디스 핀치가 어렸을 때 잠시 살았던 핀치 집안의 저택으로 오랜만에 돌아와, 가족들에게 벌어진 일들을 하나씩 알아간다. 1인칭 시점으로 집 안을 걸어다니며 물건을 뒤적이고 숨겨진 이야기를 발견하는, 흔히 워킹 시뮬레이터라 부르는 장르다. 튜토리얼도 없을 만큼 조작이 단순하고, 플레이타임은 두세 시간이면 충분하다.

이 집에는 가족 각자의 이름이 적힌 방들이 있다. 그런데 에디스는 어렸을 때 이 방들에 들어가본 적이 없다. 엄마가 모든 방을 잠가버렸기 때문이다. 핀치 가문의 가계도를 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이 집안 사람들 대부분이 짧은 생을 살고 죽었다. 가문에 저주가 내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로. 그래서 엄마는 그 죽음들에 대해 말하는 것 자체를 봉인해버린 거다.

에디스는 이제 잠긴 방들을 하나씩 열고 들어가, 그 방의 주인이 남긴 일기와 편지와 사진을 통해 그들이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죽었는지를 알아간다. 그리고 이름만 있던 가계도에 얼굴을 하나씩 그려넣는다.

죽음을 1인칭으로 체험한다는 것

이 게임이 특별한 건, 각 인물의 죽음을 ‘전해 듣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눈으로 직접 ‘살아보게’ 한다는 데 있다.

어떤 죽음은 꿈에서나 나타날 법한 공상의 형태로 체험된다. 동물이나 괴물이 되어 그 사람의 상상 속을 직접 뛰어다니는 식이다. 어떤 죽음은 그 사람이 남긴 그림책을 넘기며, 어떤 죽음은 카메라 셔터를 누를 때마다 진행되는 사진들 속에서 재구성된다. 아역 배우 출신 인물의 삶과 그를 둘러싼 루머는 통째로 한 권의 만화책이 되어 있다.

가장 압도적인 건 연어 통조림 공장에서 일하던 인물의 이야기다. 한 손으로는 기계적으로 연어를 손질하는 단조로운 노동을 계속하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그의 머릿속에서 점점 자라나는 화려한 왕국의 환상을 조작해야 한다. 노동과 망상을 동시에 플레이하게 만드는 것. 정신증(psychosis)을 겪는 사람의 내면을 이렇게 정확하고 아름답게 번역해낸 사례를 나는 게임 밖에서도 본 적이 없다.

중요한 건, 이 모든 체험이 죽음의 ‘기록’이 아니라 삶의 ‘기록’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그 사람이 어떻게 죽었는지를 알게 되지만, 정작 몸으로 겪는 것은 그 사람이 무엇을 꿈꿨고 무엇에 사로잡혀 있었는지다. 죽음의 순간에 도달할 때쯤이면, 우리는 이미 그 사람을 애도할 수 있을 만큼 그 사람을 알게 되어 있다.

남는 것은 이야기다

제목의 “What Remains”는 중의적이다. 에디스 핀치의 ‘유해’이기도 하고, 에디스 핀치에게 ‘남은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한 사람이 죽은 뒤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 이 게임의 대답은 명확하다. 이야기다.

핀치 가문 사람들은 저마다 허무하고, 기이하고, 때로는 어이없는 죽음을 맞았다. 엄마처럼 그 죽음들을 잠가버리는 것도 하나의 대응일 거다. 그러나 이 게임은 다른 길을 보여준다. 잠긴 문을 열고, 죽은 이들의 이야기를 끝까지 읽고, 가계도의 빈자리에 얼굴을 그려넣는 것. 애도란 잊는 것도 봉인하는 것도 아니라, 죽은 사람을 이야기의 형태로 다시 곁에 두는 일이라는 것.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 연출도 이 게임의 미덕이다. ‘이게 죽었다는 거야, 사라졌다는 거야?’ 싶은 대목들이 있는데, 나는 이 모호함이 좋았다. 죽음이란 원래 산 자에게 끝내 완전히 해석되지 않는 사건이니까. 굳이 이 게임의 분위기를 말하자면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들을 닮았다. 겉보기엔 으스스하지만 실은 공포가 아니라,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와 슬픔과 기묘한 아름다움이 섞여 있는 쪽.

엔딩 크레딧에는 제작진의 어릴 적 사진이 액자에 담겨 지나간다. 이 게임을 만든 사람들도 알고 있는 거다. 우리 모두 언젠가는 누군가의 가계도 속 얼굴로, 누군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로 남게 된다는 걸.

워킹 시뮬레이터라는 장르가 자칫하면 지루하고 뻔할 수 있는데, 이 게임은 다양한 장치와 섬세한 연출을 통해 ‘게임’이라는 매체가 이야기를 다루는 방식이 얼마나 무궁무진할 수 있는지 아주 세련되게 보여준다. 짧은 러닝타임이 아쉽지 않은 수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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