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er Wilds》 — 죽음을 마중 나가는 법
22분마다 끝나는 우주
《Outer Wilds》가 뭐하는 게임이냐고 묻는다면, 우주 탐사 게임이라고 답해야 할 것 같다. 아주 크지 않은 태양계 안에서 각각의 특징을 가진 행성들을 탐험하는 게임. 전투 같은 건 전혀 없다.
주인공은 우주탐사대 “아우터 와일즈 벤처스” 소속으로 첫 탐사를 떠난다. 먼저 떠난 선배 대원들은 각자 다른 행성에서 악기를 하나씩 연주하고 있고, 주인공은 신호탐지기로 그 연주 소리를 추적할 수 있다. (언젠가 “한 번 송출된 라디오 전파는 영원히 우주를 떠돈다”는 글귀를 본 적이 있는데, 어쨌거나 꽤나 낭만적인 설정이다.)
그리고 게임을 하다 보면 태양이 초신성이 되어 폭발하고 플레이어는 즉시 사망한다. 다시 눈을 뜨면 게임을 시작한 지점이다. 태양은 22분마다 어김없이 폭발한다. 결국 22분짜리 타임 루프를 무한히 돌면서 탐사 기록을 우주선 일지에 쌓아가며 이 우주의 비밀에 다가가는 구조다. 퀘스트나 미션 같은 지령은 없다. 어디로 가서 무엇을 알아낼지는 전적으로 플레이어 스스로 결정한다.
혹시 아직 이 게임을 안 해본 사람이라면 여기서 글을 닫고 아무 정보 없이 직접 플레이하기를 강력히 권한다. 스스로 단서를 모아 길을 찾는 것이 이 게임의 전부이기 때문에, 사소한 스포일러조차 이 게임이 줄 수 있는 최고의 경험을 앗아간다.
아우터 와일즈는 반복적인 죽음이라는 신기한 경험을 제공한다
대부분의 게임에서 죽음은 그저 메커니즘이나 규칙일 뿐이다. 생명이 다하거나 시간 내에 임무를 완수하지 못했을 때 실패했다는 식으로 플레이를 중단시키는 게 전부다.
그러나 이 게임에서 죽음은 필연이다. 내가 잘하면 사는 것도, 못해서 죽는 것도 아니다. 때가 되면 태양이 무조건 폭발하기 때문에 당연히 죽는 거다. 그래서 게임 초반에는 주어진 탐사 시간이 얼마 없다는 생각 때문에 일종의 타임 어택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중요한 장소를 처음 발견하고 탐사를 시작했는데 폭발 시간이 다 되어가면 너무 조급해지고, 하던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서두르게 되더라.
그러나 결국엔 때가 되어 또 죽는다. 그리고 눈을 뜨면 다시 시작점. 허탈하다.
그런데 이렇게 어김없이 찾아오는 죽음을 반복해서 마주하다 보면 그 죽음을 대하는 내 태도가 서서히 바뀌는 걸 깨닫는다. 나중에는 죽음이 얼마 안 남았음을 감지하고(특정한 음악이 나오기 때문에 알 수 있다) 모닥불 앞에 앉아 태연하게 마시멜로를 구워 먹거나, 태양이 눈부시게 터져버리는 광경을 바라보며 멍 때리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더라.
옛사람들은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는 말을 곁에 두고 살았다는데, 이 게임은 그 오래된 격언을 22분짜리 루프라는 형식으로 번역해놓은 셈이다. 게임 초반에는 시간이 흘러 죽음을 마주해야 한다는 사실이 조급하게 느껴지지만, 어느새 내가 먼저 마중 나가서 그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게 된다. 이건 정말 놀라운 경험이다.
(이제부터는 게임의 결말을 중심으로 소감을 전해야 하기 때문에 스포일러가 있다.)
그런데 나를 한 번 더 놀라게 만든 건 이 게임의 결말이다
행성들을 탐사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외계인들이 남겨놓은 연구 흔적들을 수집하게 되고, 이런 정보와 장치들을 활용하면 태양의 폭발, 즉 이 세계의 종말을 멈출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된다. (특히 워프의 원리를 깨닫고 처음 성공했을 때 그 짜릿함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물론 이 희망이라는 것도 썩 온전하진 않다. 애초에 이 게임이 나에게 ‘목표’라는 걸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요한 단서를 모은 것 같긴 한데, 그래서 구체적으로 내가 뭘 향해 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을 갖고 게임을 계속하게 된다. ‘양자의 달’에는 대체 어떻게 갈 수 있지? 말로만 듣던 ‘우주의 눈’이라는 게 진짜 존재하긴 하는 거야?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우주의 눈’은 실재하는 곳이었고, 결국엔 외계인들이 그토록 도달하고 싶어했던 궁극의 장소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곳에 발을 디뎠을 때는 정말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리고 태양의 폭발이나 세상의 종말을 막을 수 있겠다는 기대도 생겼다.
그러나 이 기대는 오래가지 않는다. 그동안 22분 타임 루프를 가능하게 했던 장치를 우주의 눈에 오는 데 사용했기 때문에 타임 루프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상태였고, 그럼에도 태양은 때가 되어 어김없이 폭발했으며, 결국 나(주인공)는 사망해버린다. 이쯤에서 ‘그러면 난 그동안 대체 무슨 고생을 한 거야?’ 하는 허무함마저 든다.
그렇다.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것. 고작 그 지긋지긋한 루프를 끊어냈을 뿐이었고, 오히려 완전한 죽음을 맞은 셈이다. 내가 우주의 비밀을 밝혀내고 세상의 종말을 막는다? 이런 건 애초부터 이 게임의 목표가 아니었던 거다.
내가 마지막으로 믿고 도착했던 장소 ‘우주의 눈’이 그동안 외계인들의 숭배를 받았던 것도 어쩌면 당연한 거였다. 그들도 이곳에 닿으면 죽음을 막을 수 있을 거라 믿어왔던 거다. 그러나 이곳에 신은 없었다. 때가 되어 태양은 폭발했고 결국 우리 모두 죽었다.
그렇다면 아우터 와일즈가 얘기하는 “삶의 의미”란 무엇일까
열심히 플레이했으나 결국 허무하게 죽어버린 주인공이 도착한 곳은 어느 숲속 모닥불 앞. 이미 게임을 플레이하며 만났던 아우터 와일즈 대원들이 각자의 악기를 들고 모닥불 앞에 하나둘 모여 앉아 합주를 시작한다.
물론 이들의 연주는 게임을 플레이하며 신호탐지기를 통해 여러 번 들었기 때문에 꽤나 익숙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렇게 모든 악기가 동시에 연주하는 음을 듣고 나면 이게 결국 하나의 완성된 곡이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결국 우리의 삶은 다가올 죽음을 부정하거나 이에 맞서 싸우는 과정이 아니었다. 그저 주어진 시간 동안 새로운 곳을 탐험하고, 각자의 사연이 있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과 음식을 나눠 먹고 함께 노래하는 것.
생각해보면 내가 우주를 돌아다니며 추적했던 외계인들의 흔적에서도 그들의 치열한 연구, 그리고 사랑 같은 걸 느낄 수 있었다. 물론 그들은 우주의 눈을 찾는 데 실패했지만, 그 과정에서 죽기 전까지 진실하게 살아왔던 거다.
오히려 ‘우주의 눈’ 근처까지 갔던 외계인이 한 명 있었는데, 만났을 때 그의 모습은 살아 있는 것도, 그렇다고 죽은 것도 아닌 림보 상태에 빠져 있었다. 그를 만나 대화를 해보면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건 오히려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허무한 상태라는 걸 깨닫게 된다. 죽음이 없으면 삶에 마감이 없고, 마감이 없는 이야기는 완성되지 않는다. 유한함이야말로 의미의 조건이라는 것. 이 게임은 이 역설을 설교하는 대신 직접 겪게 만든다.
아무튼 이 게임의 엔딩을 보고 나서야 드디어 긴장이 풀리며 내가 그동안 해왔던 모든 탐사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애초에 이길 수 있는 싸움이 아니었던 거다. 죽음을 겸허하게 받아들이자 비로소 마음 놓고 동료들이 연주하는 그 음악을 즐길 수 있게 된다.
이 게임은 엔딩 크레딧 이후 143억 년이 지난 시점에서 새로 탄생한 행성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아예 처음 보는 외모의 생물체(?)가 모닥불을 쬐고 있는 게 눈에 띈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위로를 받을 수 있다. 나의 세계는 반드시 끝을 맞이할 테지만, 그와 동시에 우주 어딘가에서는 또 다른 가능성이 새롭게 피어난다는 것. 그것도 내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모습으로.
내가 죽기 전에, 살아 있는 동안 이렇게 아름다운 게임을 해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아직까지 가슴이 벅차다.
요즘엔 이 게임의 사운드트랙 듣는 낙으로 살고 있다.
이 게임의 제작 다큐멘터리도 재밌게 봤다.
내 인생 게임 Outer Wilds. 죽을 때까지 못 잊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