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리뷰 《Outer Wilds – Echoes of the Eye》
누가 나에게 “네 인생 최고의 게임이 무엇이냐” 묻거든 난 주저 없이 Outer Wilds(아우터 와일즈)라고 말할 거다. 이미 블로그에 리뷰를 남긴 적도 있었지. 최근에 그토록 기다리던 DLC가 드디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얼른 가서 플레이 했다. 그런데 이 게임 정말… DLC까지 이렇게 완벽해도 되는 건가. 어쨌든 DLC에서 또 한 번 감탄하고 남기는 리뷰.
Echoes of the Eye 소개
일단 티저 영상이 처음 공개됐을 때는 이게 대체 뭔가 싶었다.
게임이 출시된 시점에 새로 공개된 트레일러를 봐도 역시 아리송하다.
일단 DLC의 제목은 Echoes of the Eye, 눈의 메아리라는 뜻이고, 아우터 와일즈 본편을 하면서 “우주의 눈”의 존재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으니, 우주의 눈과 관련한 무언가가 아닐까 했다.
일단 DLC를 다운 받아 게임을 시작하면 마을 천문대(박물관)에 새로운 정보가 추가되었다면서 가보라고 한다. 천문대에 가보니 최근에 태양계를 관측하는 심우주 위성을 발사했고, 마을 근처 (본편에는 등장하지 않던) 통신탑이라는 곳에서는 그 위성에서 보낸 신호나 사진을 기록해 연구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니나 다를까. 본편에 못보던 건물인 통신탑이 마을 근처 들판에 세워져있더라.
통신탑 안에 들어가보면 위성에서 찍은 사진들이 벽에 네 장 걸려있는데, 이 중 특정 각도에서 찍은 사진 하나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태양의 일부가 동그란 그림자로 살짝 가려져 있는 거다. 아직 이 그림자의 정체는 모른다. 어쨌든 심우주 위성이라는 곳을 신호탐지기로 추적해서 가보고, 사진에 적힌 각도와 일치할 때까지 위성 궤도를 따라 기다려봤더니 진짜 태양이 무언가로 가려지더라. 그래서 그곳을 향해 우주선을 타고 재빨리 가보는데…
태양을 가린 존재는 “스트레인저”라는 이름의 거대한 행성이었고, 눈에 띄지 않도록 은폐장 같은 게 씌워져 있는 거였다. 이 행성을 탐험하는 것이 DLC의 컨텐츠. 이곳을 둘러보다 보면 (이미 노마이가 우리 태양계에 오기 이전에) 우주의 눈이 보내는 신호를 찾아 우리 태양계로 건너온 외계 종족이 살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자세한 내용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므로 생략)
Echoes of the Eye 주요 특징
플레이하면서 본편과는 다른 몇 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1) “스트레인저”라는 하나의 행성을 탐험
일단 난 이 게임이 DLC를 출시할 거라고는 예상치도 못했다. 이미 태양계 각 행성마다 고유의 특징이 확실하고, 본편 엔딩을 보기 위한 단서들이 각 행성 곳곳에 섬세하게 배치된 디자인이기 때문에 이 자체로 너무나 완벽한 22분이고, 더 이상 다른 요소가 끼어들 틈이 없다고 생각했던 거다.
그러나 이 게임 개발자들은 역시 천재였다. DLC를 통해 본편에는 없던 새로운 행성 하나를 추가했는데, 이 행성이 등장하는 방식과 플레이를 통해 발견하게 되는 장면 연출 또한 너무나 훌륭했으며, 이 행성 안에 또 다른 시뮬레이션 요소를 추가해서 공간을 거의 두 배로 확장 시켜 놓은 거다. 행성마다 개성이 뚜렷해서 모험하는 재미를 주는 게 이 게임의 진정한 묘미였던 만큼, 이번 DLC에 새로 등장한 “스트레인저”도 플레이어를 절대 실망시키지 않는다.
(2) 글이 아닌 이미지 중심의 모험
노마이의 발자취를 따르는 본편에서는 그들이 남긴 기록을 번역기로 읽어보면서 그들의 연구성과나 각종 일지를 확인할 수가 있었지만, 이번 DLC의 특징이라 하면 아예 처음보는 종족이 남긴 흔적을 추적해야 하는 거라 번역기를 사용할 수 없다. 대신 이들은 일종의 필름 같은 슬라이드 릴 형태로 이미지를 기록했기 때문에 오래된 사진이나 그림을 보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쫓아가는 재미가 있었다. 본편은 노마이의 기록을 이해하는 것이 플레이에 꽤나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공식 한국어 번역이 아닌 유저 패치를 적용하는 것을 권장하지만, DLC는 그냥 플레이해도 전혀 상관이 없다.
(3) 빛과 어둠을 활용한 퍼즐과 공포
이 게임 본편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안다. 애초에 이 게임은 물리적 시공간을 활용한 퍼즐요소가 정말 기발하다는 걸. 이번 DLC도 이를 실망시키진 않았고, 오히려 빛과 어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새로운 재미를 선사한다. 일단 시작부터 위성사진에 태양을 가린 알 수 없는 그림자가 등장하고, 행성에 있는 대부분의 입구는 빛을 활용해 작동시켜야 열린다. 그림을 비추는 랜턴을 치우면 나타나는 이상한 비밀통로, 랜턴의 빛을 활용해 길을 찾는 공포스러운 꿈(시뮬레이션) 세계 등 플레이를 하다보면 게임에서 빛과 어둠을 이런 식으로 재밌게 활용할 수 있구나 새삼 놀란다. 특히 이번에 추가된 공포 요소는 여타 공포 게임 못지 않은 수준이라 정말 놀랍다. 게다가 공포를 정면으로 마주치지 않을 수 있도록 이 세계에서 다른 장치나 길을 활용해 힌트를 발견하거나 우회로를 찾을 수 있도록 한 점도 역시 감탄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아우터 와일즈 개발진들은 분명 물리적 시공간, 빛과 어둠을 어떻게 게임에서 활용할 수 있는지 정말 잘 알고 있는 천재들이다.
(4) 새로운 외계 종족의 등장
이번 DLC 눈의 메아리를 플레이한 사람들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을 꼽으라면 십중팔구는 새로 등장한 외계 종족을 언급할 거다. 사슴 뿔과 부엉이의 얼굴을 합쳐 놓은 엘크(Elk)족인데, 일단 너무 너무 무섭고, 글로 된 기록이 없어서 말도 안 통한다는 느낌을 준다. 어쩌면 본편의 노마이족과 대조적인 분위기를 주기 때문에 더 강렬하게 느껴진 게 아닐까 싶다.
노마이들은 수다스러운 느낌이라 기본적으로 밝은 인상을 준다. 그들이 남긴 기록을 읽어봐도 끊임 없이 농담과 사랑을 나누며, 그럼에도 우주의 눈을 찾겠다는 연구를 포기하지 않는 열정적이고 따뜻한 마음이 느껴진달까. 반면 이 엘크족은 상당히 건조하다. 행성 자체는 나무가 많고 물이 흐르기 때문에 생기 있고 밝은 느낌이지만, 일단 이들이 실제로 틀어 박힌 꿈(시뮬레이션) 세계에 진입하면 주거지가 상당히 어둡고 조용하다는 걸 알 수 있다. 게다가 이들 문명의 역사를 알면 알수록 이러한 인상은 더 강화된다. 우주의 눈을 찾아 태양계에 오기 위해 자기 행성의 자원을 착취해 행성을 개조시키는 모습이라든가, 우주의 눈의 실체를 알고 사원을 불태우거나 신호를 봉인해버리는 모습, 더 이상의 새로운 모험을 포기하고 원래 살던 고향 행성을 재현한 가상 세계를 만들어 그 안에 틀어박히는 모습을 보면 노마이와 확실히 대조적이라는 걸 알 수 있다.
Echoes of the Eye 플레이 후 소감
어쨌든 게임의 본편이 그랬듯, 이번 DLC도 배경 지식을 다 알고 나면 한 번에 엔딩을 볼 수 있는 구조다. 조사를 통해 지식을 넓히고, 그렇게 얻은 지식을 다른 곳에 활용하면서 결국 단서를 최종적으로 조합하게 되는 디자인. 답은 언제나 내 앞에 있었던 거다. 방법을 몰랐을 뿐.
그리고 DLC 엔딩을 보고 난 후, 본편 엔딩을 한 번 더 보면 새로운 밴드 멤버가 추가된 걸 알 수 있는데, 이 녀석 또한 합주할 때 자기 악기를 가지고 와서 원곡에 화음을 넣어준다. 또 봐도 아름다운 이 게임의 엔딩.
내가 생각하는 이 게임의 핵심 메시지는 이런 거다.
우리는 우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 그렇다고 너무 겁부터 먹진 말자. 일단 모닥불 앞에 마시멜로를 하나 구워먹는 거야. 그리고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악기를 하나씩 들고 모여 앉아 합주를 시작해보자.
아무튼 너무나 아름다운, 내 인생 최고의 게임. 조만간 공식 굿즈 재입고 된다는데, 시간 맞춰서 대기하다가 재고 풀리면 바로 구매할 예정이다. (사운드트랙 바이닐을 못 산 게 너무나 아쉽지만, 혹시 또 생산될 수도 있으니 일단 계속 기다려봐야지.)
요즘 심심할 때마다 아우터와일즈 reddit 게시판 보는 낙으로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