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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리뷰 《TUNIC》

튜닉(TUNIC)은 내가 올해 발견한 최고의 게임이다.

튜닉이 어떤 게임이냐고 묻는다면 한 마디로 답하기 쉽지 않다. 흔히 젤다의 전설과 다크소울(엘든링)을 합쳐놓은 것 같다고 평하는데, 그저 귀여운 여우 캐릭터가 탐험을 하며 전투를 벌이는 게임이라고 생각하면 아주 큰 오산이다. 튜닉에는 명작 게임들의 장점을 빌려온 것 이상의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전투는 다크소울 시리즈의 시스템을 떠올리면 된다. 화톳불에 불을 피우고 물약을 회복하는 대신 적들이 리셋되는 메커니즘. 필드에서의 전투 난이도는 아주 쉽지도 어렵지도 않았고, 보스전에서는 여러 번 죽어가며 패턴을 파악해야 깰 수 있었다.

그러나 튜닉의 핵심은 전투가 아니다.

지금부터 내가 튜닉을 사랑하는 이유를 남겨본다.

완벽하게 구성된 한 편의 퍼즐 어드벤처

튜닉은 처음부터 아주 불친절하다. 이 불친절함은 이 게임이 철저히 한 편의 퍼즐이라는 걸 암시한다. 그래서 이 게임을 즐겁게 플레이하도록 만드는 가장 큰 동력은 호기심이라 할 수 있다.

1. 미완성의 설명서 책자

튜닉은 게임 외 메뉴에서 별도의 도움말이 없다. 대신 게임 내에서 주인공이 가지고 있는 설명서 책자를 통해 도움말을 읽어내야 한다.튜닉의 세계관과 스토리 조작법, 지도, 구역의 목표, 힌트 등을 확인해야 한다.

이 설명서 책자를 열어서 뒤적거리다 보면 마치 어렸을 때 영어나 일본어 매뉴얼을 보며 게임을 하는 것과 같은 향수가 느껴지기도 한다. 디자인도 아기자기한 게…

그런데 이 설명서조차 완성본이 아니라는 점이 기발하다.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이 설명서를 한 장 한 장 모을 수 있는데, 모든 페이지를 수집하지 못하면 전체 내용을 알 수 없다.

튜닉은 게임 설명서조차 플레이어가 직접 완성하도록 유도하면서 플레이어의 탐험 및 수집 욕구를 자극한다.

2. 해독 불가능한 문자 체계

설명서 페이지를 모은다고 모든 게 해결되느냐 묻는다면 그렇지도 않다. 설명서는 애초에 우리가 살면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문자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강제로 문맹 체험을 하게 된다.

페이지를 아주 자세히 살펴보면 이미지와 기호들이 정말 기가 막히게 구성되어 있어 어느정도 내용을 유추할 수 있다. 그러나 완전한 해석이 불가능하다는 점, 그 점이 오히려 플레이어로 하여금 끝까지 호기심을 놓지 못하도록 하는 중요한 장치인 셈이다.

물론 이 문자를 이걸 해독해내는 것도 어쩌면 이 게임의 목표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어 사용자 입장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쉽지 않은 게 튜닉에서 등장하는 문자는 영어 발음에 해당하는 기호 체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영어권의 어떤 플레이어는 이 규칙을 설명하는 치트 시트를 만들어 공유하기도 했다.

튜닉 언어(문자) 체계

물론 우리가 굳이 이 문자 체계를 습득할 필요는 없다. 이 체계를 알게 되면 숨겨진 도전 과제에 해당하는, 12개의 secret treasures를 모두 수집한 다음 풀어야 하는 번외 퍼즐도 풀 수 있긴 하나, 그건 게임 내 세계관을 벗어나는 수준이기 때문에 정 궁금하다면 게임 엔딩을 본 후에 따로 찾아보길 권한다. (참고 영상)

3. 숨겨진 비밀과 길을 찾아가는 재미

튜닉은 쿼터 뷰 혹은 아이소메트릭 뷰(isometric view)라 부르는 게임 시점을 제공하는데, 지형지물이나 캐릭터 파악이 쉬운 반면 보이는 각도가 제한적이다. 그러나 게임 개발자는 이 안에서 숨겨진 길이나 각종 장치들을 재치 있게 배치함으로써 탐험의 재미를 극대화 한다. 길을 밝히고 원하는 아이템을 얻기 위해 맵을 더 자세히 관찰해야 할 때도 있고, 때로는 더 큰 그림을 보아야 할 때도 있다.

게다가 메트로배니아의 성격도 가지고 있어서 나중에 얻은 스킬이나 아이템을 통해 기존에 갈 수 없었던 길을 건너거나 맵을 확장해간다. 개인적으로 메트로배니아를 좋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튜닉은 아주 적절한 수준에서 이러한 메커니즘을 훌륭하게 이용했다.

4. 다채로운 지역과 컨셉/테마의 전환

튜닉에서 동쪽 숲, 서쪽 정원, 우물 밑, 산호섬 폐허, 채석장, 옛 매장지, 대성당 등 꽤 많은 지역들이 있으며, 이 지역들은 각기 다른 테마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해당 지역을 탐험할 때마다 계속 새로운 자극을 느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튜닉은 스토리의 전반부가 마무리 되고 나면 후반부에서는 컨셉이나 테마가 전환된다. (전반부는 전투, 후반부는 퍼즐이 핵심인데 자세한 내용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므로 생략한다.) 요즘 나오는 대부분의 게임들이 시스템과 메커니즘을 일관되게 유지한 채 갈수록 플레이어가 성장함에 따라 좀 더 도전적인 과제를 부여하는 레벨 디자인을 취하기 때문에 플레이어가 충분히 예상 가능한 전개를 보이는데, 튜닉은 게임 엔딩을 보기 전까지 플레이어가 지루해지질 틈을 주지 않는다.

이 퍼즐 또한 정말 기발한 방식으로 출제를 해놓아서… 이를 테면 게임 메뉴를 통해 접근하기도 하는데… (자세한 내용은 생략)

5. 결국 최종 보스는 퍼즐

튜닉은 설명서 책자에서도 나와 있듯 총 2개의 게임 클리어 조건이 있다.

  • A: 자신의 정당한 지위를 차지하라 (후계자와 싸워 이기기)
  • B: 지식 공유 (산속 관문 퍼즐 풀기)

A 루트로 직진하면 배드 엔딩이다. B의 루트로 퍼즐을 풀어 산속 관문을 통과하면 설명서의 최종 페이지인 맨 앞장, 즉 표지를 얻을 수 있는데, 그걸 가지고 후계자에게 가면 진짜 엔딩, 해피 엔딩을 볼 수 있다. (엔딩 크레딧 화면도 다르게 연출된다.)

그런데 이 퍼즐을 푸는 게 만만치 않을 거다. 이 퍼즐을 풀기 위해서는 표지를 제외한 설명서의 모든 페이지를 모아야 하는데, 힌트를 하나 던지자면… 설명서 48페이지에 있는 20마리의 요정 목록 중에서 10마리 이상을 구출해야 설명서 마지막 페이지를 얻을 수가 있다는 것 정도.

튜닉은 공략을 찾아보지 않고 혼자 힘으로 플레이하는 걸 추천한다. 나는 이 게임에 등장하는 퍼즐들을 풀기 위해 따로 스마트폰을 꺼내 메모를 하거나 사진을 찍기도 했고, 화면 캡쳐 이미지를 자르고 회전해서 조합하기도 했다. 어떤 퍼즐은 며칠동안 풀지 못해 하루 종일 맵을 돌아다니며 실마리가 없는지 뒤적거리기도 했다. 물론 꽤나 애를 먹었지만, 어쨌든 고민하다 보니 진 엔딩을 보기 위해 필요한 퍼즐들을 하나씩 클리어할 수 있었다. 결국 혼자 힘으로 마지막 퍼즐을 풀어냈을 때 그 성취감은 너무나 짜릿해서 진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아마 튜닉 최종 퍼즐을 혼자 풀어낸 게 올해 내 최대 업적이 아닐까 싶다. 😭)

결국 해답은 설명서에 있더라.

아무튼 내게는 튜닉이 올해 최고의 게임이었다. 호기심으로 충만한 어드벤처 게임 매니아들에게 강력 추천.

This post is licensed under CC BY 4.0 by the auth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