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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리뷰 《What Remains of Edith Finch》

국내에는 “에디스 핀치의 유산”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게임 《What Remains of Edith Finch》를 플레이하고 여운이 가시지 않아 남기는 리뷰.

플레이타임 짧으면서도 많은 집중력과 피지컬을 요구하지 않는, 즉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명작 게임을 뒤적거리다가 알게 된 작품이고, 한동안 구매를 미루다가 이제서야 사서 플레이 했는데, 좀 후회했다. 이런 명작을 이제야 하다니… 진작 할 걸.

참고로 이 게임은 BAFTA(British Academy of Film and Television Arts)에서 2017년도 최우수 게임에 선정되기도 했다. BAFTA는 올해의 게임(GOTY)을 시상하는 여러 매체들 중에서도 꽤 권위 있는 곳으로 꼽힌다. 물론 대중성, 흥행성보다는 예술성, 작가 정신, 기존과 차별화된 시도를 한 게임들에게 좀 더 후한 평가를 주는 경향이 보이긴 한다.

어쨌든 나도 이 게임을 플레이 해보니 왜 이 게임이 상을 받았는지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게임 배경 & 플레이 방식

이 게임의 스토리는 비교적 단순하다. 17세 소녀 에디스 핀치가 본인이 어렸을 때 잠시 살았던 핀치 집안의 저택으로 오랜만에 돌아와 가족들에게 벌어진 사연을 알아가는 게 기본적인 흐름.

그리고 이러한 배경에 걸맞게 1인칭 시점으로 길을 따라 걸어다니거나 집 안의 이런저런 물건을 뒤적거리면서 숨겨진 내용을 발견하는, 흔히 얘기하는 워킹 시뮬레이터 장르의 게임이다. (튜토리얼도 없을 만큼 조작도 정말 단순하다.)

사실 나도 게임을 구매하기 전에 이 정도의 정보는 알고 있었는데, 그래도 끝까지 구매를 망설였던 이유는 ‘이런 지루한 장르가 과연 재밌을까? 어차피 이것저것 파밍이나 시키면서 뻔한 스토리 진행하는 거 아닌가?’ 하는 의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게임은 일단 연출이 신선하고 섬세해서 지루할 틈이 없다.

이를 테면 내가 바라보는 시선을 따라 주인공의 독백이 흘러나오며 자막이 적절한 위치에 배치되기 때문에 마치 소설책을 몰입해서 읽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스포일러가 없는 수준에서 조금만 더 설명을 덧붙이자면 이 집에는 방이 정말 여러 개 있는데 (가족 각자 자기 이름이 적힌 방이 있다.) 주인공은 어렸을 때 이 집에 살 때 다른 가족들의 방들을 들어가본 적이 없었던 거다. 엄마가 방을 모두 잠가버렸기 때문에.

그래서 모든 방들을 다 돌아다니면서 일기, 사진, 편지 등을 열어보며 그 사람과 얽힌 이야기들을 알게 되고, 결국 이름만 있던 가계도에 하나씩 얼굴을 그려넣어 완성하는 그런 진행.

플레이 타임은 2.5시간 정도로 잡으면 충분하다. 내가 느긋하게 둘러보면서 천천히 플레이 했는데도 3시간이 채 안 걸렸다.

리뷰

좋았던 점

핀치 가문의 가계도를 보면 알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짧은 생을 살았다. 그래서 플레이를 하며 주인공이 이 인물들이 어떻게 사망했는지 혹은 실종되었는지 알아가게 된다. 여기서 약간 명확하게 답을 주지 않는(이를 테면 ‘이게 죽었다는 거야 사라졌다는 거야?’, ‘대체 어떻게 되었다는 거야?’ 등의 추측을 하게 만드는) 연출이 나타나기도 한다. 게임을 플레이한 사람들은 나중에 이 게임에 대한 해석을 찾아보는 경우도 있는 것 같더라. 그러나 나는 이러한 연출이 더 좋았다. 정말 소설이나 영화 같은 환상적인 느낌. 이 게임은 개인의 색깔을 전달하기 위해 이런저런 다양한 방법을 시도한다.

이를 테면 꿈에서나 나타날 법한 상황을 연출해 동물이나 괴물로 플레이해서 그 사람의 공상을 직접 체험하는 느낌을 전달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 사람이 남긴 그림책을 넘기며 그 사람의 예술혼이나 정신세계를 탐험하기도 한다. 카메라를 통해 바라본 시야를 가지고 셔터를 누를 때마다 내용을 진행하는 경우도 있었다. 타이머 맞추는 장면은 지금 생각해도 정말 훌륭한 것 같다.

무엇보다 나를 사로잡은 건 정신증(psychosis) 증상을 겪은 인물에 대한 묘사였다. 연어 통조림 공장에서 일하며 나타났던 그 사람의 망상을 기가 막히게 연출하더라. 그리고 아역 배우 출신의 삶과 그를 둘러싼 루머를 만화책 형식으로 재구성한 장면도 정말 좋았다. 지금 생각해도 소름 돋네.

충격적인 반전이나 이런 건 없지만, 엔딩이 또 꽤 멋지게 마무리 된다. 심지어 엔딩 크레딧에 제작진 어렸을 때 사진 액자로 구성해서 보여주는 것까지 너무 좋았다.

아쉬웠던 점

이 게임에서 굳이 아쉬운 점을 하나 꼽자면 그래픽이다. 그런데 요즘 게임들이 워낙 그래픽이 섬세하고 훌륭해서 상대적으로 좀 아쉬웠다는 느낌인 거지, 사실 그래픽이 정말 구려서 못 하겠다는 수준은 전혀 아니다. 오히려 게임 용량이 약 2GB 밖에 안 될 정도로 가벼운 게임이라 오히려 한 편으로는 이 정도면 훌륭하다 할 수도 있고. 아무튼.

아, 그리고 또 하나를 꼽자면 이 게임의 마케팅이다. 게임 포스터 문제인지 아니면 그래픽(색감) 문제인진 모르겠는데 아무튼 이 게임은 실제로 해보기 전에 스크린샷 같은 것만 보면 좀 으스스하고 공포스러운 분위기가 난다. 그런데 이걸 만약 의도한 것이라면 게임을 홍보하는 데 좋은 포인트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 게임은 확실히 공포 장르는 아니고 뭔가 미스테리한 사연들을 하나씩 알아가는 느낌이라… 굳이 따지자면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 장르랄까. 물론 나는 이런 분위기도 좋아하긴 하지만 좀 더 강한 자극을 찾는 게이머에겐 좀 약한 느낌이라 마케팅적인 측면에서 좀 애매한 포지션을 갖게 된 게 아닐까 싶다.

총평

워킹 시뮬레이터라는 장르가 자칫하면 지루하고 뻔할 수 있는데, 이 게임은 다양한 장치와 섬세한 연출을 통해 굉장한 인상을 전달한다. ‘게임’ 산업이 얼마나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있는지 아주 세련되게 보여준 수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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