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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리뷰 《Before Your Eyes》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눈을 쉼 없이 깜빡인다. 보통 1분에 15~20회, 하루에 약 15,000~20,000번 깜박인다고.

그런데 이러한 눈 깜빡임을 게임에 적용시킨 사례가 있으니 바로 《Before Your Eyes》라는 게임이다. (개인적으로 게임 이름도 마음에 들더라.) 이렇게 좋은 게임을 했다는 것을 나 스스로도 기억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짧게라도 글을 남기기로 했다.

트레일러 영상이나 소개 글, 리뷰를 살펴보면 짐작할 수 있듯이 이 게임은 웹캠을 켜고 해야 한다. 눈 깜빡임을 입력 신호로 받아 스토리를 전개하는 내러티브 게임.

나야 워낙 회의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인간이기에 이 게임에 대해서도 그닥 기대를 하지 않았다. 단순히 입력 신호를 눈깜빡임으로 받는 정도일 거고, 그 외의 새로운 경험은 상상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역시 중요한 건 내러티브였고, 게임의 주제, 전하고자 하는 그 무언가를 눈 깜빡임이라는 방식을 통해 아주 적절하게 녹여냈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이고도 위대한 삶이란

게임을 시작하면 주인공은 어떤 뱃사공(페리맨)과 함께 배를 타고 있다. 이 뱃사공은 죽은 영혼을 저승의 문지기에게 안내하는 역할을 하는데,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저승의 뱃사공 카론의 메타포라는 걸 알 수 있다. 어쨌든 뱃사공은 자신이 일종의 변호사 역할을 해줄 테니 나(주인공)에게 본인의 인생을 돌이켜보라고 한다. 결국 갓난아기 시절부터 자신의 삶에서 중요한 순간들을 회상하며 게임이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지나간 장면들을 돌이켜 보면 주인공이 나름 화려한(?) 삶을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의 바람대로 피아노를 배웠지만 그림에 재능이 있어서 결국 천재 화가로 세계적인 성공을 하기도 하고. 그런데 진행 과정에서 어느 순간 갑자기 뱃사공은 주인공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자신을 행복한 아이와 외로운 아이 중 어느 것으로 묘사할래?”

질문을 자꾸 하길래 나름 대답을 했더니 갑자기 뱃사공은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며, 처음부터 다시 이야기를 시작하게 한다. 여기부터 진실이 드러나는데… (스포일러)

주인공이 어렸을 때로 되돌아가서 다시 플레이를 하다 보니 어느새 몸이 아파 침대에 주로 누워 있는 장면이 등장하더라. 결국 이전에 뱃사공에게 들려줬던 그 이야기는 침대에 누워서 죽음을 두려워한 11살짜리 주인공이 자신이 원했던 ‘위대한 생’에 대해 일종의 소설처럼 상상력을 발휘하여 쓴 것이었을 뿐이었고, 실제 주인공은 그냥 아픈 아이였던 거다.

그런데 아파서 죽어가는 순간, 침대 곁에 주인공 엄마가 등장해서 그 이야기를 읽어 보고는 이렇게 말한다. 이 이야기도 좋긴 하지만 본인이 정말 좋아하는 모습은 아니라고… 이런 이야기는 네가 이미 살아냈던 ‘위대한 생’을 잊게 만들 뿐이라며… 이미 너는 충분히 위대한 삶을 살았다고 얘기하는 거다. 주인공이 부모에게 얼마나 큰 희망을 주었는지, 주변 친구에게 얼마나 큰 기쁨을 주었는지 조목조목 이야기해주는 엄마의 모습…

게임 전체 진행과정을 통틀어 이 부분이 가장 압권인데, 침대 맡에서 따뜻하게 이야기 해주는 엄마의 모습과 저승의 문지기에게 이 주인공의 생애를 전달하는 뱃사공의 모습을 겹쳐서 제시하는 방식을 통해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가장 개인적이면서도 위대한 삶이란 무엇인지 플레이어에게 전달하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순간은 언제나 눈 깜빡할 사이에…

이 게임이 대단한 이유는 과학 기술과 게임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매우 조화로운 지점에서 만났다는 데에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눈을 깜빡이는 건 통제하기 어려운 (참을 수 없는) 자연스러운 생리현상인데, 이 게임에서는 플레이어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눈을 깜빡이는 순간 화면에 흘러 나오고 있던 회상 장면을 다음 장면으로 휙 넘겨버린다. 그 순간에 계속 남고 싶어도, 뚜렷하게 붙잡고 기억하고 싶어도 어느새 지나가버리는 우리의 소중한 순간들처럼 말이다.

게임이 눈 깜빡임을 입력 신호로 받기 때문에 만약 장면 전환을 원치 않는다면 의식적으로 눈을 감지 않기 위해 노력을 한다거나 웹캠을 가리는 꼼수를 사용할 수도 있을 거다. 그러나 그건 이 게임의 기획 의도에 부합하지 않는 행위다. 기억하고 싶은 그 순간들이 눈 깜빡하는 사이에 흘러가는 경험, 이게 바로 이 게임이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경험이며, 실제로 우리가 현실을 살아가는 방식이기도 하니까.

웹캠으로 눈 깜빡임을 감지하는 게 최신 기술이 전혀 아니라는 건 누구나 알고 있을 거다. 다만 《Before Your Eyes》는 기술을 어디에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플레이어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는 걸 아주 명쾌하게 보여준 게임이었다.

“눈 깜빡할 새”라는 상투적인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리는 게임 《Before Your Eyes》.

This post is licensed under CC BY 4.0 by the auth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