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OM Eternal》 — 생각이 멈춘 자리에서 시작되는 카타르시스
1993년의 둠, 그리고 지금의 둠
내가 기억하는 둠은 이런 모습이다.
뭔가 좀 조악하긴 하지만, 당시 3D로 FPS 플레이를 한다는 게 신선했고, HP가 줄어들면 얼굴에서 피 흘리는 표현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당시 둠이 얼마나 유명했었냐면, 빌 게이츠가 윈도우95에서 둠이 잘 돌아간다며 홍보하는 영상까지 찍었을 정도.
그로부터 약 30년 뒤에 나온 《둠 이터널》은, 놀랍게도 그 시절의 둠과 본질적으로 같은 게임이다. 그래픽과 속도는 비교할 수 없이 화려해졌지만 하는 일은 똑같다. “슬레이어”라는 주인공이 되어 온갖 무기로 악마들을 쏴 죽이거나 전기톱으로 갈아버리며 전진한다. 그리고 이 게임에 대해 남기고 싶은 얘기는 공략이 아니라 좀 다른 것이다.
“게임의 스토리는 포르노의 스토리와 같다”
“게임의 스토리는 포르노에서의 스토리와 같다. 있으면 좋겠지만 중요하진 않다.” (Story in a game is like a story in a porn movie. It’s expected to be there, but it’s not that important.)
이 말은 《둠》과 《퀘이크》 시리즈를 만들며 1인칭 슈팅 장르 자체를 확립한 전설적인 개발자 존 카맥(John Carmack)이 1992년 둠을 개발할 당시에 했던 말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캠페인 엔딩까지 보긴 했지만 이 게임의 스토리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별로 알고 싶지도 않다. 그리고 놀랍게도, 스토리에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아도 게임은 아주 재밌게 흘러간다. 30년 전 카맥의 저 도발적인 명제를 최신작이 여전히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무아지경의 설계
나는 게임에서 스토리를 꽤나 중요시하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별 스토리 없이 화려한 액션만으로 아드레날린을 치솟게 하며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준 게임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래서 이 카타르시스가 어디서 오는 건지 생각해보게 되더라.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이 관객의 감정을 격발시켰다가 배설하듯 씻어내는 효과를 카타르시스라고 불렀다. 그런데 둠 이터널은 서사 없이, 순수하게 리듬만으로 그 상태에 도달하게 만든다. 이 게임의 전투는 잠시도 멈출 수 없게 설계되어 있다. 탄약도, 체력도, 방어구도 모두 적을 공격해야만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궁지에 몰릴수록 숨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적진 한가운데로 뛰어들어야 한다. 후퇴와 회복이라는 선택지를 구조적으로 지워버린 거다.
그 결과 플레이어는 눈앞의 판단에만 온전히 붙들린 상태, 자아도 잡념도 끼어들 틈이 없는 일종의 몰입(flow) 상태에 빠진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몰입이 과제의 난이도와 나의 능력이 팽팽하게 맞물릴 때 시간 감각과 자의식이 사라지는 경험이라면, 둠 이터널은 그 상태를 헤비메탈 사운드 위에서 인위적으로 제조해내는 기계에 가깝다.
명상이 생각을 비워 고요에 도달하는 길이라면, 둠은 생각할 겨를을 없애버려서 같은 곳에 도달한다. 정반대의 길로 도달하는 무아지경이라는 아이러니. 이게 내가 이 게임에서 발견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이다.
게임을 오래 하다 보면 일종의 게임 불감증 같은 게 오기도 한다던데. 특히 많은 양의 텍스트에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들에게는 한 번쯤 권하고 싶은 게임이다. 아무 생각 없이 전장에 나가면 피가 끓을 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