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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리뷰 《Papers, Please》

이번에 한 게임은 스팀 세일 기간에 구매한 《Papers, Please》. 오랜만에 만난 좋은 게임이기에 귀찮더라도 리뷰를 남기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페이퍼 플리즈는 2013년에 출시한, 꽤 오래된 게임이다. 워낙 훌륭한 게임이라 게임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이미 인기가 있었던 모양이지만, 여러모로 인디게임 감성이기 때문에 아는 사람만 아는 게임(?) 정도의 지위에 있었는데, 2022년에 모바일 버전으로도 출시되면서 다시 한 번 입소문을 타고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되었다.

나는 처음 이 게임에 대한 소개를 이렇게 들었다. “출입국관리사무소(공무원)의 일과를 체험하는 게임. 근데 재밌다. 상당한 수작이다.”

얘기 듣고 감이 잘 안 오길래 일단 트레일러부터 봤다.

이렇게만 보면 상당히 그래픽도 조악하고, 이게 대체 어떤 포인트에서 재밌다는 건지 전혀 감이 안 올 수 있다. 그냥 사람들이 입국할 때 내는 서류 검토해서 도장 찍어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배경, 설정이 다 차려놓은 게임

그런데 이 게임은 배경 설정이 상당히 중요하다. 일단 내가 일하는 곳이 썩어빠진 공산주의 국가의 국경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이 나라로 밀려오는 사람들의 군상은 다양하다. 공무원의 삶이 다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온갖 뇌물과 비리의 유혹이 다가오기도 한다. 그 와중에 나의 봉급은 또 얼마나 짠지. 일과가 끝나면 일종의 가계부를 관리해야 하는데, 집은 춥고, 가족들은 병들기도 한다. 처자식 먹여살려야 하기에 어깨가 무겁다.

이 게임은 상당히 정치적이며, 동시에 지극히 개인적인 삶 속에서 다양한 갈등 요소가 파고드는 경험을 제공한다는 걸 깨닫는 순간부터 게임은 재밌어지기 시작한다. 어쨌든 매일매일 출퇴근 하다 보면 이런저런 사건이 발생하고, 그 속에서 나의 선택에 따라 다양한 스토리 분기점과 무려 20개의 엔딩이 존재한다. 굳이 비슷한 게임을 꼽아보자면 《This War of Mine》이 떠오른다.

노동이 재밌어지는 신기한 경험

페이퍼 플리즈의 주된 플레이 시간은 노동, 서류 검토로 이루어진다. 입국하려는 자의 서류를 받아서 사진, 이름, 성별, 키, 몸무게, 입국 목적 및 체류 기간 등 온갖 정보들에서 잘못된 부분이 없는지 꼼꼼하게 검토해서 도장을 찍어줘야 되는데, 이게 생각보다 상당히 고된 경험이다. 그리고 이걸 허투루 해서도 안 된다. 나의 성과가 곧 일당으로 직결되고, 일과 후 집으로 돌아가면 온갖 지출 항목들이 날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일 안 하고 놀고 싶을 때 주로 게임을 한다. 그런데 이 게임은 굳이 게임 속에서 나에게 일을 시킨다. 신기한 건 그게 재밌다는 거다. 정치 외교적 상황에 맞물려 적용해야 하는 정책이 달라지기도 하고, 일이 하기 싫어질 때쯤 되면 이상한 사건 사고가 터지곤 한다. 지루할 틈이 없다.

번역이 더한 감칠맛

이 게임은 그래픽이 화려하지도, 조작이 복잡하지도 않기 때문에 모바일 버전으로 하더라도 터치 조작만으로 충분히 컨텐츠를 즐길 수 있다. 다만 스팀에서 PC버전으로 구매하면 한국어 유저들이 개발한 비공식 한글패치를 적용할 수 있는데, 이게 대한민국 표준어(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가 아니라 무려 북한 문화어를 사용하는 패치다. “동무, 려권 내라우”

처음에는 단순히 공산주의국가라는 이유만으로 굳이 이렇게까지 오버를 했나 하는 의구심도 있었는데, 직접 적용해서 해보니 왜 그랬는지 너무나 수긍이 갔다. 그냥 찰떡궁합이다. 불법 입국하려는 범죄자 잡아서 아오지 처음 보낼 때는 너무나 웃기더라.

게다가 지정학적인 배경이 맞물리면서 뭔가 몰입이 더 잘 됐다. 가깝고도 먼 나라 북한… 잘은 모르지만 왠지 그 번역 패치 하나만으로도 엄청 몰입감이 높아지는 게 신기했다. 문화어 패치는 선택이 아닌 필수.

게임 후 여운이 남는다면 단편 영화를 보자

이 게임이 어지간히 성공했는지, 2018년에는 무려 단편영화까지 제작이 되었다. 게임의 엔딩 본 후 영화를 보니 감흥이 더 생생하고 좋았다. 심지어 영화 퀄리티도,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하다.

PAPERS, PLEASE – The Short Film (2018)

아무튼 뻔한 대형 게임들이 난무하는 요즘 게임 시장에서 오랜만에 이런 좋은 게임 찾아서 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새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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