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d Dead Redemption 2》 — 무법의 시대, 구원의 조건
갱단의 몰락이라는 서사시
《Red Dead Redemption 2》(일명 레데리2)의 배경은 1899년, 무법시대라 불리던 미국 서부의 끝자락이다. 주인공 아서 모건(Arthur Morgan)은 더치 반 더 린드(Dutch Van Der Linde)가 이끄는 갱단의 일원으로, 어렸을 때부터 이 갱단에서 자라 갱단을 가족처럼 여긴다. 그리고 이 갱단이 서서히 몰락해가는 과정이 곧 이 게임의 스토리다. 90시간 가까이 플레이해서 엔딩까지 보고 나니, “한 편의 서사시”라는 식상한 표현이 이만큼 어울리는 게임도 드물다는 생각이 든다.
제목의 “구원(Redemption)”에 관하여
처음엔 그냥 평범한 서부시대 배경의 유치한 총질 게임일 거라 생각했는데, 결과적으로 이건 나의 오만이었다.
게임을 하면서 아서는 갱단의 행보에 대해 계속 회의를 느낀다. 우리 갱단은 죄 없는 사람을 털거나 죽이지 않으며 다 같이 먹고 살 길을 찾는 게 목표라고 믿었는데, 어느새 무고한 마을 사람도 불가피하게 죽이게 되고, 정부와 미국 원주민 사이의 분쟁 같은 어려운 문제에 복잡하게 휘말린다.
보스 더치는 그때마다 자신에게 다 계획이 있다면서, 이번 임무만 마치면 큰돈을 벌어 타히티 같은 섬에서 우리끼리 자유롭게 살 수 있다고 사람들을 설득한다. 난 이런 장면이 나올 때마다 〈브레이킹 배드〉의 월터 화이트가 생각났다. 월터 화이트도 자신의 모든 마약 사업이 다 가족을 위해 하는 일이라며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다짐하곤 했지. 명분이 행동을 정당화하는 게 아니라, 행동이 누적될수록 명분이 낡아가는 과정. 그 곁에서 만감이 교차하는 아서는 그런 면에서 제시 핑크맨과 유사한 인물이다.
스토리가 진행되다 보면 아서가 폐결핵에 걸려 시한부 삶을 선고받는데, 이때부터 본격적인 회개가 시작된다.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자 지금까지 갱단이 했던 짓들이 다 무슨 의미였는지 회의를 느끼고, 그동안 자신이 틈틈이 도왔던 사람들이 가족과 보금자리, 잃어버린 재산을 되찾는 모습을 회상하며 삶의 의미를 깨닫는다.
제목에 붙은 “Redemption”이라는 단어는 그래서 정확하다. 이 게임의 구원은 신이 내려주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앞둔 인간이 자기 삶을 돌아보며 마지막으로 선택하는 것이다. 사회적 원칙이나 기준이 전무한 무법의 시대에 어디까지가 인간이 지켜야 할 기준인지, 무엇이 옳은 선택인지 끊임없이 갈등하게 만드는 게임. 법이 없는 곳에서도 양심은 작동하는가 — 이 게임이 90시간 내내 던지는 질문은 결국 이것이었다.
느림이 만드는 도덕적 무게
레데리2의 단점으로 흔히 지적되는 게 바로 ‘너무나 디테일한 묘사’다. 서랍을 뒤지거나 선반에서 물건 하나를 집을 때도 일일이 동작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굉장히 답답하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이 느림이야말로 이 게임의 핵심 장치라고 생각한다. 모든 행동에 시간과 무게가 실리기 때문에, 이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버튼 입력이 아니라 ‘행위’처럼 느껴진다. 말을 타고 한참을 달려야 닿는 거리, 눈 덮인 북부의 산악지대와 안개 짙은 숲, 별이 쏟아질 것 같은 밤하늘 아래를 통과하는 그 긴 시간 동안 플레이어는 아서와 함께 생각할 시간을 갖게 된다. 총 한 발이 가볍지 않은 세계여야, 총을 쏘지 않는 선택도 비로소 무거워진다.
거의 완벽에 가까운 서부시대 시뮬레이터라 불리는 이 게임의 그 지독한 리얼리즘은, 결국 플레이어가 아서의 삶을 ‘구경’하는 게 아니라 ‘살아보게’ 만들기 위한 장치였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