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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리뷰 《Return to Monkey Island》

게이머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게임 《원숭이섬의 비밀》. 이 게임은 스타워즈와 인디아나존스로 유명한 조지 루카스가 설립한 루카스 아츠의 어드벤처 게임이다. 1990년에 출시했으니 벌써 3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당시 기술로는 최첨단의 그래픽 구현과 함께 포인트 앤 클릭 시스템을 통한 퍼즐 풀이, 풍자와 유머가 넘치는 대사들로 가득한 이 게임은 어드벤처 게임 장르에서 희대의 명작으로 남았다.

물론 이후에도 원숭이 섬 게임 시리즈의 후속작들이 출시되긴 했으나 1, 2편을 제작 담당한 론 길버트는 루카스필름을 퇴사하고 이후 시리즈에는 크게 관여하지 않았다. 그러던 그가 올해 루카스필름과 함께 원숭이섬으로의 귀환 (Return to Monkey Island)이라는, 어쩌면 이 게임 시리즈의 최종판을 만들어 발표한 것이다.

플레이 해본 결과, 난 2022년 최고의 게임으로 이 게임을 꼽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물론 이 게임은 기존 원숭이섬 시리즈를 플레이 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감동이 있기 때문에 혹시 이 게임에 관심이 있다면 1편은 무조건 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지금부터 내가 이 게임을 사랑하는 이유를 남겨본다.

1. 게임 그 이상의 게임

원숭이섬의 비밀(1편)을 플레이 한 사람은 다 알 거다. 해적이 되기 위한 가이브러쉬의 여정에서 얻게 되는 거라곤 고작 티셔츠 쪼가리와 해적들이 검투에서 서로 주고 받는 욕 배틀 스킬이다. 그리고 게임 엔딩에서도 우리에게 다시 한 번 일러준다. 20달러 이상 주고 게임 사지 말라는 교훈을…

이게 바로 원숭이섬 시리즈의 정체성인 셈이다. 시대상을 반영한 풍자와 메타 비평. 이 게임에는 제 4의 벽을 허무는 대사들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데, 마치 자기 자신이 게임이라는 걸 알고 있다는 듯 매우 자기 풍자적인 성향이 강하다.

어드벤처 게임은 대사의 품질이 정말 중요한데, 원숭이섬의 대사들은 하나 같이 찰지고 유쾌한 대화들로 가득해서 플레이하는 내내 미소와 실소가 끊이지 않는다. 한국어 번역도 상당히 훌륭하다. (예를 들면 Scumm Bar를 쓸애기 주점이라고 번역해주는 등)

2. 스탠다드의 훌륭한 변주

원숭이 섬의 비밀 2편의 엔딩은 기존 원숭이섬 팬들로부터 수많은 비난을 받았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모든 모험이 그저 공상 세계였다고 허무하게 만들어버렸기 때문. 그러나 원숭이섬의 귀환에서는 이 엔딩을 활용해서 다시 훌륭한 변주를 해낸다. 2탄 엔딩 장소였던 놀이공원에서 주인공 가이브러쉬의 아들 보이브러쉬(센스있는 작명)가 등장하여 아버지의 모험기를 듣는 설정으로 다시 게임을 이어간다.

게임 중반에는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캐릭터들을 다시 등장시켜서 활용하는 장면들도 기가 막히다. 기어코 부두 여인의 이름을 알게 되기도 하고 (이름도 모르며 이 여인을 궁금해할 때가 좋았지… 그런데 오히려 이름을 알게 되자 허무해지는 그 감정마저 게임에 살려냈다.), 사기꾼 선박 판매원 스탠(도트 그래픽으로 구현했던 스탠의 화려한 자켓은 여전했다.)의 마케팅 솜씨가 발휘되기도 한다. 추억의 얼굴들이 다시 게임 곳곳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니 정말 좋았다.

게다가 게임 엔딩 또한 눈물 날 정도로 좋았다. 내 손으로 직접 그 놀이공원의 불을 끌 때 그 느낌… 게임이라는 게 어차피 일종의 놀이동산이고 우리의 상상력과 어울어져 현실과 동떨어진 신비한 모험의 장이 되는 것인데, 원숭이섬은 그 점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토이스토리 3의 엔딩에서 느껴지는 그 감정이다.

엔딩을 본 후에는 게임 스크랩북에서 개발자 론 길버트의 편지를 읽을 수 있는데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고 결국 이 게임을 내놓게 되었는지 알 수 있다. 자기 과거를 받아들이고 또 다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성숙한 어른의 자세도 느껴지더.

3. 현 시대 버전으로 업그레이드

원숭이섬의 비밀 1편을 지금 플레이하라고 하면 답답하게 느낄 사람들이 대부분일 거다. 인터페이스도 불편하고 간혹 악랄한 퍼즐이 등장하기도 한다. 포인트 앤 클릭 기반의 어드벤처 게임 특성상 때로는 소모적인 픽셀 헌팅을 해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원숭이섬으로의 귀환에서는 불편한 시스템을 대폭 개선했고, 심지어 힌트북이라는 장치를 통해 스포일러를 최소화하며 도움을 주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이번에 선보인 아트 스타일이 오히려 기존 팬들에게 호불호 포인트라고 하는데, 개인적으로 너무 좋았다. 너무 조악하거나 유치하지 않으면서도 동화적인 느낌을 잘 살려냈고 기존 캐릭터들의 개성은 더욱 극대화 했으니 말이다.

총평

원숭이섬의 비밀에서 중요한 건 ‘비밀’이 아니다. 비밀을 찾아 떠나는 ‘모험’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원숭이섬으로의 귀환은 인생에서 신나는 모험과 엄청난 보물을 꿈꾸던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쓰는 회고록이다.

2022년 내가 가장 즐겁게 플레이한, 그리고 엔딩을 본 후 눈물이 핑 도는 게임.

This post is licensed under CC BY 4.0 by the auth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