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gotten City》 — 한 사람이 죄를 지으면 모두가 벌을 받는다
지하에 봉인된 고대 도시
《The Forgotten City》는 엘더스크롤 스카이림의 모드로 시작해, 유저들의 압도적인 찬사에 힘입어 스탠드얼론 게임으로까지 출시된 작품이다.
설정은 이렇다. 주인공은 지하 깊은 곳에 숨겨진 고대 로마 도시에 들어가게 되는데, 이 도시에는 ‘황금률’이라는 규칙을 받아들인 약 스무 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누군가 한 명이라도 ‘죄’를 지으면 도시의 모든 사람이 황금 조각상으로 변해버리는 저주. 일종의 연대책임이다. 그리고 저주가 발동될 때마다 주인공은 타임루프를 통해 처음 도시에 도착한 시점으로 돌아간다. 사람들과 대화하고 도시를 탐험하며 얻은 정보를 다음 루프에 활용해서, 이 도시의 비밀을 풀고 탈출하는 것이 게임의 목표다.
(이하 게임의 주제에 관한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되어 있다.)
‘황금률’이라는 말장난
황금률(The Golden Rule)은 원래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보편 윤리의 이름이다. 거의 모든 문명과 종교가 제각기 이 원칙을 발견했다는 점에서 인류 도덕의 최소공배수라고도 불린다.
그런데 이 게임은 그 이름을 비틀어서 정반대의 규칙에 붙였다. “한 사람이 죄를 지으면 모두가 벌을 받는다(The many shall suffer for the sins of the one).” 게임 전체가 이 뒤틀린 황금률에 대한 사고실험인 셈이다. 죄란 무엇인가. 도둑질은 죄인데, 굶어 죽어가는 사람이 빵을 훔치는 것도 죄인가. 죄를 정의하는 자는 누구이며, 그 기준은 어느 시대의 것인가. 그리고 무엇보다 — 한 사람의 죄를 이유로 공동체 전체를 벌하는 것은 정의로울 수 있는가.
플레이어는 이 질문들을 관념적으로 사색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겪는다. 마을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나의 말 한마디가 누군가를 죽음으로 몰기도 하고, 저주를 발동시키기도 한다. 그때마다 타임루프로 돌아가 다른 접근을 시도하면서, 플레이어는 자연스럽게 더 나은 선택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윤리적 주체가 된다. 심지어 게임 후반에는 이 도시의 신적 존재와 황금률의 정당성을 놓고 직접 논쟁을 벌이는 순간까지 온다. 처벌의 비례성, 연좌제의 부당함, 신의 정의와 인간의 정의 — 게임을 하다가 내가 마치 그리스 시대의 철학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될 줄은 몰랐다.
네 개의 문명, 하나의 신
이 게임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감탄했던 설정은 따로 있다. 도시의 유적을 탐험하다 보면 이 고대 로마 도시 아래에 그리스의 흔적이, 그 아래에 이집트의 흔적이, 또 그 아래에 수메르의 흔적이 겹겹이 쌓여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대신전으로 들어가는 네 개의 문에는 각 문명이 죽음의 신을 부르던 서로 다른 이름들이 붙어 있다. 이름만 다를 뿐, 결국 같은 대상이다.
문명은 일어서고 무너지기를 반복했지만, 인간이 두려워한 것은 언제나 같았다는 것. 그리고 각 시대는 그 두려움에 제 나름의 이름을 붙이고 제 나름의 규칙을 만들어 섬겼다는 것. 종교사에서 말하는 습합(syncretism)의 풍경을 이렇게 게임의 공간 구조로, 발밑에 쌓인 지층으로 보여주는 연출은 정말 우아하다.
참고로 이 게임에는 네 개의 엔딩이 있고 번호가 매겨져 있는데, 그 서열의 기준이 흥미롭다. 더 어려운 엔딩일수록 더 많은 사람을 구원하는 엔딩이다. 엔딩의 위계를 ‘난이도’나 ‘진실’이 아니라 ‘구원한 사람의 수’로 매긴 것 — 이 게임이 어떤 윤리적 태도 위에 서 있는지를 이보다 잘 보여주는 장치는 없을 거다.
총평
모든 게임은 결국 개인적인 경험이 중요하다. 내가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느낀 경이로움을 다른 누군가는 느끼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에 애초에 게임 리뷰나 추천이라는 건 지극히 주관적인 영역이다.
더 포가튼 시티는 요즘 게임 시장에서 대세라 할 수 있는 광활한 오픈월드와 자유도가 있는 것도 아니고, 화려한 액션과 전투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최근에 내가 플레이한 어떤 게임보다 놀라운 경험을 선사했다. 시대와 문화를 초월하는 도덕 법칙이라는 게 존재할 수 있는 것인지 스스로 묻고 대답하게 만드는 게임.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봤으면 하는 훌륭한 내러티브 어드벤처다.